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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Jul 10. 2021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더해서

성공과 실패. 유년 시절 이후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니는 두 개의 키워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이제는 더 이상 자주 쓰이지 않는 이유는 실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리더들이 귀가 닳도록 언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영어교육 기업 ‘야나두’의 김민철 대표도 한 예능에 출연해 10년 동안 모은 돈을 10개월 만에 잃는 등 무려 27번의 실패를 경험했다고 했다. 내가 신기했던 것은 27번이라는 실패 횟수가 아니라, 실패 횟수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는 김 대표의 태도였다.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더해서 마침내 성공한 그를 보며 피너츠 만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타자기를 치며 우드스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스누피)

우드스탁: ''''''''''''''!

스누피: 정말?

(어디론가 날아가는 우드스탁)

스누피: (미소 지으며)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뭔가를 들고 돌아오는 우드스탁)

스누피: 우드스탁이 나를 위해 그동안 받은 원고 거절 통지서로 이불을 만들었어!


* rejection slip: a notification of rejection, attached by a publisher to a manuscript before returning the work to its author.


스누피만큼 실패를 많이 경험한 이들도 적을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타자기 앞에 앉아서 소설이나 자서전을 쓰지만 결과는 늘 편집자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는다. 편집자는 때로는 정중하고 거절하지만, 때로는 '끔찍한 작품'이라며 제발 더 이상 보내지 말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누피는 다시 타자기 앞에 앉아서 투고 편지를 쓴다. 


재미있는 것은 우드스탁이 스누피가 퇴짜 맞은 통지서들을 모두 모아 붙여서 이불로 만들어준 것이다. 편집자에게는 끔찍한 작품들이었고 직설적인 피드백을 담아 원고 거절 통지서를 보냈지만, 우드스탁은 그걸 모았다가 스누피를 위해 이불을 만든다. 그걸 덮고 행복하게 잠드는 스누피. 누군가에겐 실패한 작품들이지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아끼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작품들을 '실패작'으로 정의한 통지서로 만든 이불에 덮여 있는 스누피는 실패에 덮인 것이 아니라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더해서 만든 또 하나의 작품에 덮인 것이다. 오히려 대단하지 않은가! 원고 거절 통지서로 이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했단 말인가. 스누피는 오늘도 타자기를 꺼내 글을 쓴다.



주위에서 실패를 자주 경험하며 성장하는 이들을 많이 보는가. 여러 리더들이 작은 실패의 경험을 최대한 자주 하라고 조언하지만 이를 따르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다. 만약 주위에 그런 롤모델들이 많이 있다면 정말 좋은 커뮤니티에 속했다거나 좋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부터도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여전히 두렵다. 그 이유를 꼭 나이가 들면서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많아졌다는 것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내 커리어에 실패 경험을 찾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큰 족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다만 안전한 길로만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대체 나와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실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실패에서 대해서 잘 아는가. 어떤 것이 실패일까. 혹시 자신이 실패한 경험 한 가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가. 스타트업 임원 시절 면접관으로 임원 면접을 수 없이 진행했다. 단골 질문 중에 하나가 실패 경험에 대한 것이다. 사실 기억에 남는 면접자들의 실패 이야기가 별로 없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본인이 창업했다가 실패한 경험 정도인데, 실패한 이유가 결국 준비 부족이어서 사실 이걸 실패라고 정의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어서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는 실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실패에 대한 기억들 중에 상당수가 실패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제안 발표가 있었는데 준비가 부족해서 망쳤다면 그것을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건 본인의 잘못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실패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본인이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자 그러면 다시 질문해보자. 본인이 최선을 다했는데 잘 되지 않은 경험이 있는가? 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경험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능 시험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에 지원했다 떨어졌던 기억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후회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에 그 경험은 분명 실패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3년 전 글로벌 회사의 APAC (아시아 태평양) 매니저 포지션에 지원했다 탈락한 경험이다. 당시 APAC 대표 면접까지 통과했지만 추가로 진행된 CFO 면접 결과가 좋지 못해 떨어졌었다. 총 3개월 동안 진행된 면접에서 나는 면접 준비 노트까지 만들어가면 철저히 준비했기에 내 면접 경험 중에 유일하게 실패라고 '자랑'할 수 있다.


실패는 자랑해도 된다


과거 본인의 잘못은 굳이 들춰 보여줄 필요가 없지만, 최선을 다해 얻은 실패의 경험은 자랑해도 된다. 나도 앞에서 말한 면접 실패 경험을 자주 이야기한다. 나와 비슷하게 면접을 앞두고 있는 지인들에게 내 실패 경험은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그렇다. 때로는 성공보다 실패가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실패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100% 잘못된 경우보다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특정 부분에서 잘못돼서 실패로 이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배울 부분이 많다. 그래서 실패를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 제대로 된 성공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도 분명 있다. 내 경우 실패로 인한 고통이 가장 큰 이유다. 실패는 참 아프다. 정말로 몸이 아프기도 하고, 대부분의 경우 마음에 큰 고통을 안겨준다. 내 경우 처음으로 팀장을 맡았을 때 그랬다. 3명밖에 되지 않는 팀원을 뒀지만 그래도 나름 어벤져스와 같이 매일 함께 일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팀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채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통합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말 배우고 느낀 것이 많았지만, 그만큼 내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크기 또한 컸다. 이를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던 경험이었다. 이처럼 실패가 큰 자산이 되고 또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만 같이 따라오는 고통으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실패 가능성이 높은 행동은 피하게 됐다. 


가만히 있는 것이 인생의 실패는 아닐까


실패가 고통스러움에도 실패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냥 이렇게 적당히 실패 없이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실패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실패의 정의가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성공에 다다르지 못해 고통이 남는 것이라면, 나는 남은 인생 가운데 계속해서 실패를 경험하고 간혹 성공도 경험해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실패가 너무 고통스럽고 이제는 나뿐 아니라 내 주위에도 고통이 될 수 있으니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요소를 없애고,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는 인생을 사는 게 맞는 것일까. 그런 내가 며칠 전 아들과 대화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아빠: 아빠가 아직은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국에서만큼 돈을 벌지 못해. 아마 내년부터는 일도 많이 하고 더 벌 수 있을 거야.

아들: 아빠 지금도 많이 바빠 보이던데?


아들이 어떤 의미로 내가 바빠 보인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일도 줄고 시간도 더 생겨서 여유롭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인생이 그러하다. '오늘부터 부담 없이 편히 살 거야'라고 마음을 먹어도 옆에서 지켜보면 치열하게 살고 있다. 인생은 결국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믿는다. 실패하는 와중에 크고 작은 성공이란 선물도 함께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더해서 좀 더 단단한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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