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많이 듣던 말이 있다. '마크는 자존감이 높은 거 같아'라는 말이다. 실제로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성격 탓일 수도 있고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자존감이 좀 더 높아진 탓도 있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전략'이나 '컨설팅' 쪽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앞에 나서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적어도 겉으로는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경우가 많았을 거다.
글을 쓰면서 신기한 사실이 있다. 내 글을 읽고 댓글이든 DM이든 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독자분들의 대부분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 글 중에 힘든 시기에 도움과 위로가 되는 글이 많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꽤 자주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회사, 집,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어제도 또 오늘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오늘 글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한 글이다.
인생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대학교 1학년 자전거로 강촌을 다녀왔다. 왕복 160km 정도 되는 거리였다. 이젠 20여 년 전 일이라 기억나는 순간이 많지 않지만 강촌 자전거 여행은 여러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오르막 길을 수십 분 동안 힘들게 올랐다가 같은 높이의 내리막을 수분 만에 내려오는 순간의 시원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이다. 물론 여기서 오르막은 길지만 힘든 시간이고, 내리막은 짧지만 강렬하게 행복한 순간이다. 자전거 타고 내려오는 길은 너무 시원했지만 순간이었다. 우리 인생 역시 대체로 좋은 순간보다는 힘든 시간이 더 많고 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 길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강촌으로 가는 길, 힘들게 오르막을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21단 자전거도 아니고, 올라가서 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먹을 수 있던 간식도 아니었다. 바로 오르막 정상에서 아래로 펼쳐진 텅 빈 도로를 마음껏 내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힘든 순간은 대체로 길다. 그리고 힘들어서 긴 게 아니라, 길어서 힘든 것이다. '젠장, 이 상황이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휴,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네'라고 자조석인 말을 하게 된다. 주위에서 여러 조언을 해주지만 정작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을 때 우린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땐 계속 오르막을 오를 수밖에 없다. 갑자기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다만, 포기 대신에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반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르막을 끝까지 오른 사람만 누릴 수 있다.
커리어에서 가장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 외국계 회사에서 사장님의 노골적인 괴롭힘을 당했을 때였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반년 이상 지속됐다. 전략을 담당했기에 사장님과 독대할 자주 있던 터라 문제 상황을 회피할 방법이 없었다. 가까운 임원분들은 일종의 테스트라 생각하고 버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전략적이고 이성적인 나였기에 상황 파악이 바로 됐다. 이 상황은 둘 중이 한 사람이 사라져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그렇다면 결말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포기하진 않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고, 적어도 나를 아끼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남기고 떠나고 싶었다. 사장님이 꼬투리를 잡기 위해 던져준 숙제도 다른 임원들로부터 칭찬받을 정도로 해냈다. 기죽지 않고 회사 밖에서 열심히 직장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네트워크를 넓혔다. 그러다 사장님의 공격이 임계치에 이르렀고, 아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자초지종을 깊이 묻지 않았고 그러라고 했다. 몇 달간 내 마음고생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느꼈던 아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이직할 곳을 정하지 않고 회사를 나오자마자, 내 가치를 진작에 알아봐 준 회사 대표님과 연결되었다. 이전 직장보다 규모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작은 회사였지만 감사하게도 임원으로 들어가 이전에 10년 넘는 커리어에서 해보지 못한 일들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당시 내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마음이 힘들면 심장도 고장 난다는 것을 매일 체감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것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다했을 때 시원하게 내리막을 달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물론 인생은 늘 극적이진 않다. 하지만 이 경험을 비롯해 여러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내린 결론은 인생엔 오르막과 내리막이 분명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알고 조금 더 정상을 향해 올랐으면 한다.
세상에 천재는 많지 않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 신화의 시작인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은 '천재과'다. 또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처럼 고도화된 IT 관련 경험과 지식을 SNS에서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천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천재는 많지 않다. 회사 5곳에서 일하며 직간접적으로 일해본 수백 명의 사람 중 '천재과'인 사람은 한 명 정도다.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실제 만나보니까 그렇더라. 이 말인즉슨 나머지 4곳 회사엔 천재가 없었다.
천재가 없음에도 우리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사람인지라 모든 사람은 나와 상대방을 비교한다. 그 대상이 회사에서 사수가 될 수도 있고, 입사 동기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직장에 다니는 친구와도 비교할 수 있다.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곤 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교 대상을 잘 찾으면 좋다.
첫 직장 첫 사수는 회사 창립 이래 여성 첫 부장 타이틀을 갖고 있던 분이셨다. 부장님은 절대 천재과가 아니었고 100% 노력한 결과였다. 내가 이 분과 비교해 초라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꼼꼼함과 네트워킹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배웠다. 그리고 그분이 잘 못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내 강점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보도자료와 같은 딱딱한 글을 잘 쓰는 부장님과 달리 나는 회사 사보 등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글을 잘 썼다. 그렇게 해서 내가 잘하는 세부 분야에서 강점을 키웠다.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는 대개 비슷한 동료 집단에서 근무할 때다. 예를 들어 마케터만 10명이 있는 팀에서 근무하는 경우다. 이럴 때면 본인이 맡은 브랜드의 성과에 따라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고, 한없이 초라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사실 마케터가 갖고 있는 스킬을 다양하다. 그래서 마케터라고 해서 다 같은 마케터가 아니라 어떤 스킬을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투입할 수 있는 분야가 달라진다. 자신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대상은 대개 많은 스킬을 보유하고 있거나, 경험이 좀 더 풍부한 이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격차가 시간으로 따지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마케팅 스킬은 경험 유무에 따라 갈린다. 즉, 해봤냐 안 해봤냐의 차이다. 프로젝트로 치면 짧게는 3개월 프로젝트, 길게는 1년 프로젝트 차이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짧게는 1년이면 격차가 상당수 줄어든다. 앞에서 언급했던 오르막 기간인 셈이다.
이런저런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문제의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오르막 구간에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대신 오르막을 끝까지 오르기 위해선 분명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작지만 가치 있는 목표를 하나 세우자
이때 필요한 것은 작은 성공이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봤을 때 성공이 아니어도 좋다. 본인이 일정 수준 이상의 노력을 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이 본인 커리어나 삶에 있어서 가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좋다.
외국계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외국계는 국내 기업과 달리 식사 문화가 유연한 편이다. 예로 국내 기업을 다닐 땐 아침, 점심을 회사에서 제공했는데 일단 팀원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기본(디폴트)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겠지만 점심을 동기들과 먹는 날이면 팀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외국계는 말 그대로 '알아서' 해결한다. 팀장이 '오늘 점심 같이 먹을까요?'라고 물으면 다들 선약이 있다고 사라지기도 한다. 내 경우 업무적으로는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는 편이지만 어려서부터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많은 사람과 두루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길 수 있는 목표를 세웠다. 바로 매일 다른 사람과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365일 다른 사람과 밥을 먹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사용했던 방법은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하는 직원이라면 구글 캘린더로 매달 정기적인 점심 약속을 잡았다. 매달 둘째 수요일, 매달 셋째 금요일, 이런 식이었다. 한 달에 출근하는 날이 보통 20일 정도 되었고, 그중에 열흘 정도는 1명 또는 여러 명과 정기 점심 미팅을 잡았다. 나머지 열흘 정도는 팀 사람들과 또는 그때그때 약속이 잡힌 직원들과 먹었다. 효과가 있었다. 정기적으로 점심을 함께한 20명 정도 되는 이들과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또 많은 이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네트워크 효과였다. 이를 통해 마음고생을 덜하고 회사 내에서 네트워크를 다질 수 있었다.
자격증 공부 역시 작은 목표가 될 수 있다. 자격증 공부를 추천하는 것은 목표와 결과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 등록을 일단 하고 나면 배수의 진을 친 셈이라 확실히 동기부여가 된다. 내 경우 최근 테니스 코치 과정을 이수했다. 테니스를 좋아하기만 했지 코치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캐나다 현지 취업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그런데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다 보니 마음이 위축됐고, 이런 상황에서 후에 부업으로 매력적인 코치 과정에 도전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에서 차로 왕복할 수 있는 거리에서 열리는 코스가 열리는 것을 기다려 바로 지원했다. 일단 지원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번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로 진행된 코스에서 티칭 연습, 기술 연습 등을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증(certificate)을 땄다. 은퇴 후에도 꾸준히 활용할 수 있는 무기를 갖춘 것이다. 물론 현지 취업에 계속 도전해야 하고 몇 군데 서류 통과한 곳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경험한 작은 성공은 분명 큰 힘이 되었다.
데이터 분석 컨설팅 회사를 다닐 때 팀원 중에 개발자들의 경우 SQL 관련 자격증 공부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SQL은 개발자들에게 기본 스킬이었지만 회사 프로젝트에 자주 활용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직원들은 자격증 시험 준비를 같이 시작했고, 그중 일부가 결국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들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 이유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정신없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매몰돼 있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 쉬웠다. 하지만 프로젝트와 직접 상관없는 자격증 공부를 잠깐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리프레쉬하는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작은 목표였지만 그들의 현재와 미래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었다.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쓴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는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야 말로 현재 초라함을 느끼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이다. 설령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애씀을 멈추지 말자. 그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든 좋아하든 일이든 상관없다. 내가 초라함을 무릎 쓰고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믿으면 버텨낼 힘이 생긴다. 그리고 실제로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더라.
5개 회사를 거치면서 가장 오랜 시간 일했던 회사는 7년 넘게 전략기획을 맡았던 외국계 회사다. 사실 5년 정도만 해도 충분한 경력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4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이 커졌다. 업무에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아 힘들었다. 외국계라 간판은 화려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법인의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 한국법인은 영업조직이다. 그럼에도 7년을 버텨 일했다. 중간에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며 버틸 수 있었다. 신사업 등 새로운 기회가 오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남들이 맡기 싫어하는 사내 교육 업무도 맡아서 했다. 그렇게 7년의 경력은 전략, 기획, CRM, 컨설팅, 신사업, 교육 등으로 채워졌다.
지난 한 달간 캐나다 현지 회사 50개 가까운 곳에 지원했다. 그리고 딱 두 개 회사로부터 서류 통과 메일을 받아 다음 단계를 진행 중이다. 놀랍게도 두 곳 포지션 이름은 Strategy & Operations Manager와 Corporate Strategy Analyst였다. Job Description을 보니 70%는 내가 바로 그 외국계 회사에서 했던 업무, 나머지 30%는 4년간 스타트업에서 주로 했던 업무들이었다. 지원한 회사 중에 딱 이 두 곳 회사의 JD가 내 경력과 거의 100% 일치했고 결과 역시 1차 통과였다. 힘들게 7년을 버텼던 것에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뻤다. 물론 결과까지 좋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자
캐나다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당면한 과제는 영주권을 받는 것이다. 영주권이 있다고 해서 삶이 윤택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영주권이 없으면 정말로 이방인 신세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어떻게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전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조건이 좋지 않다. 캐나다 영주권은 어릴수록, 캐나다에서 경력(학교 또는 회사)이 많을수록, 영어를 잘할수록, 캐나다에서 필요로 하는 직군에서 일할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이 조건들 대부분을 만족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낙담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현실적으로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얼마 전 우리가 지금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전 세입자 가족을 초대했다. 특별한 인연으로 알게 된 몇 안 되는 지인 가족이다. 우리보다 2년 일찍 캐나다에 온 가족인데 부부 모두 성실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분들 역시 영주권은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옵션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옵션은 우리 부부 역시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생존과 관련한 문제였지만 서로의 사정과 고민을 알기에 웃으면서 얘기 나눌 수 있었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면서 서로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구체화할 수 있었다. 물론 실천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각자 노력으로 안된다면 플랜 B로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혹자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만나면 신세한탄만 하고 문제 해결 방법은 찾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람들끼리라면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좋다. 이 상황에선 누가 뭐라 해도 혼자 보단 둘이 낫다. 무엇보다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기고, 각자의 작은 성공 사례를 나눌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좋게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본인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가도 또 자신감이 생기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인생 전체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고, 하루를 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신나게 내달릴 내리막 길이 곧 나타나길, 애쓴 것이 빛을 볼 시간이 다가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