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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Oct 17. 2020

이번 역은 승진, 승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직장인과 승진, 그 애증의 관계

수납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차장으로 승진할 때 받았던 승진 레터(Promotion Letter)를 발견했다. 당시 속이 좁았던 나는 예상보다 1년 이상 늦춰진 승진이란 생각에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팀에는 나를 포함해 나이, 연차, 경력이 서로 다른 과장 셋이 있었는데 팀장님은 누구 한 사람을 먼저 승진시키는 대신 기다렸다 셋을 동시에 승진시켰다. 승진해도 연봉은 1원도 오르지 않았지만 실력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보다는 서운함이 훨씬 컸다.


수납장에서 찾은 Promotion Letter


직장인과 승진은 오래된 애증의 관계다. 시대가 변하면서 승진 제도도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직장인은 승진에 대해 할 말이 참 많다.

 



승진 제도가 똑같은 회사는 하나도 없다. 승진 제도는 생각보다 복합적이다. 고과 평가 시스템, 직급 체계, 승진 평가 시스템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자기가 경험한 승진 제도만 가지고 일반화해서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승진이다. 그런데도 직장인들이 모여 각자 회사의 승진 제도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면 모두가 마치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승진에 마음을 쓰기 때문일 거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천일 동안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을 승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승진이 주는 가장 큰 선물, 책임감


원했던 승진이든 원치 않던 승진이든, 고속 승진이든 늦깎이 승진이든, 연봉이 전혀 안 오르는 승진이든 연봉 앞자리가 바뀌는 승진이든, 모든 승진은 책임감이라는 폭탄을 선물한다. 


회사 안에서는 모든 것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다. 회사는 직원에서 승진을 선물했다고 생각하고 직원에게 그에 따른 성과, 열정, 애사심을 요구한다. 엄밀히 말하면 승진은 회사가 직원에게 선물한 것이 아니다. 직원이 성장한 만큼 그에 합당한 포지션을 부여하는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회사가 이 의무를 소홀히 할 때 좋은 직원을 놓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회사는 승진한 직원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더 많은 업무와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한다. 회사뿐 아니라 팀 내에서도, 연관 부서에서도 승진한 직원들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올라간다. 


특히 첫 승진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것과 비슷하다. 첫 회사는 놀랍게도 입사한 지 만 4년이 되면 바로 과장을 달아줬다. 물론 승진해도 연봉은 1원도 오르지 않았지만 5년 차에 과장이 되는 것은 파격이었다. 첫 승진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사수라는 커다란 우산 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원 때는 본인 업무를 하다가도 모르거나 혼자 힘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사수 또는 선배를 찾아가 물어보는 것이 허락됐다. 하지만 첫 승진 이후로는 아무리 힘든 경우에도 어떻게든 본인이 먼저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준비 없이 첫 승진을 한 경우 한동안 고생하기도 한다. 본인이 내년에 첫 승진 대상자라면 홀로서기가 준비되어 있는 지를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강해야 한다.  


승진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세상 그 어느 회사도 승진 제도가 공정할 수 없다. 이유는 승진에는 정성적인 평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개인 고과 평가에도, 승진 심사 위원회에도 곳곳에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다. 특히 특정 직급 이상은 승진 심사 위원회와 같은 곳에서 회사 대표를 포함한 임원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외국계 기업을 다닐 때 매년 연말이 되면 직원들은 사내 인트라넷의 승진 공지가 언제 뜨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명단이 올라오면 직급 순으로 훑어보면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는 축하 메일이나 메시지를 보낸다. 다음 날이 되면 회사가 시끄럽다. 기대했는데 떨어진 사람들보다는 의외의 승진자들 때문이다. 내 경우도 직장 생활하면서 승진 발표로 인해 회사가 시끄러웠던 적을 서너 차례 겪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내가 과장이었을 때 차장이었던 HR 매니저의 초고속 승진 사건이다. 이 직원은 내가 6년 동안 과장에서 차장으로 한 번 승진했을 때, 차장에서, 부장, 이사, 상무로 세 번의 승진을 했다. 이사가 되었을 때부터 사내에서 불만의 소리가 들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무로 파격 승진을 하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난리가 났다. 특히 한 직원이 회사 대표에게 HR 매니저의 초고속 승진이 부당한 이유를 조목조목 대면서 회사의 입장을 요청한 일로 회사 전체가 뒤집어졌다. 그 직원은 실제 대표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메일을 보냈고 이런 상황을 블라인드에 공유했다. 대표는 할 말 있으면 찾아오라는 식으로 어슬렁 넘어가려 했다. 결국 회사가 버티기 작전으로 나와 승진이 취소되는 일은 없었지만 이후 회사 승진 제도가 보다 투명해진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참고로 당사자인 HR 매니저는 한동안 전 직원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결국 건강 문제로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걱정하진 말자. 승진 제도는 절대 공정하지 않지만, 공정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생각해도 괜찮다. 내 경우처럼  1년, 2년 늦을 수도 있지만 먼저 승진한다고 다음 승진도 먼저 한다는 보장은 없다.  


승진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어떻게든 승진하면 이직할 때 덕을 본다


자신이 현재 회사에 뼈를 묻지 않고 언젠가는 이직할 거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든 이직 전에 승진하는 것이 많이 유리하다. 이직할 때 모든 조건의 기준은 직전 직장의 직급과 연봉이다. 물론 실력이 중요하지만 실력을 직접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직급과 연봉을 기준으로 협상이 시작된다. 때문에 승진할 때가 다가온 직원들은 아무리 이직을 하고 싶어도 1, 2년 더 버티면서 승진하고 나서 이직하기도 한다.  


물론 이직하면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내 경우도 두 번째 이직하면서 이사 직급으로 승진했다. 물론 회사 규모가 몇십 분의 일인 규모인 회사로 이직했기 때문에 일대일로 비교할 순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가치와 실력을 알아주는 회사를 만나서 좋은 포지션으로 제안을 받는다면 굳이 현재 직장에서의 직급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승진 제도가 나은 이단아, 어린 상사와 후배 상사


이제 어린 상사나 후배 상사는 외국계 기업이나 스타트업뿐 아니라 국내 기업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나보다 어리지만 연차가 더 많은 매니저를 둔 적이 잠깐 있었다. 직장에선 나이보단 연차가 우선이기에 이런 경우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분명히 입사는 먼저 했는데 세월이 흘러 위아래가 역전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 직속 상사 중에도 최연소 임원이 된 분이 있었다. 너무 빠르게 승진하다 보니 본인이 입사했을 때 자신의 사수였던 선배들이 이제는 본인 밑에서 존댓말을 하면서 쩔쩔매는 관계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본인이 현재 회사에서 더 뜻한 바가 있다면 이 같은 상황도 감당해야 한다. 


사실 나이 역전, 연차 역전 현상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매니징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매니저가 되고 임원이 되는 것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 회사에서는 나이를 잊는 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만년 부장은 누구인가?


승진 이야기를 하면 늘 따라다니는 단어가 바로 '만년 부장'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젊은 시절 만년 부장을 무시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분들을 누구보다 존중한다. 만년 부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실 그들 자신이 아니라 회사 시스템이다. 누군가는 만년 부장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에서 만년 부장인 이들을 쉽게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솔직히 나도 이전 회사에 계속 남았다면 만년 부장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을 거다. 회사라는 곳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 주위에도 만년 부장 분들이 많다. 누구나 받는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에 더해서 만년 부장이라는 주위의 시선이 이 분들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생각하면 직장 사회가 참 냉혹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느 분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얼마 전에 이사해서 대출금 갚아야 하거든. 열심히 다녀야지.' 만년 부장이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은 열린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한다. 




주위 젊은 후배들과 얘기해보면 의외로 승진에 욕심이 많지 않다. 확실히 요즘은 승진을 해서 빨리 매니저가 되고 싶은 사람과 승진과 관계없이 본인이 계획한 대로 커리어와 실력을 쌓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승진 제도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진다면 승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보다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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