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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Oct 25. 2020

엄마 아빠는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다

"마크, 나 오늘 야근할 거 같아. 고객사에서 문제가 생겨서 유지 보수해주고 퇴근할 수 있을 거 같아."


"정말? 나 오늘 팀원 환송회라고 말했었잖아. 첫째 픽업은 어떻게 해?'


신혼 시절 우리 부부는 맞벌이였다. 다행히 내 직장이 집에서 가까워 아침에 출근하면서 첫째를 직장 근처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할 때는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데려왔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들 대부분이 그렇듯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맞벌이 부부뿐 아니라 직장을 다니는 모든 엄마, 아빠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내와 나 둘 중에 아무도 어린이집에 혼자 남은 첫째를 픽업할 수 없었다. 급하게 근처에 사는 교회 지인에게 연락해서 대신 픽업해 맡아 주시길 부탁드렸다. 다행히 아내 야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지인 집에서 밥 얻어먹고 그 집 형들이랑 고 있는 첫째를 데리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생겼다. 그때마다 둘 중 한 사람은 팀장이나 동료들 눈치 보며 사정을 얘기하고 빠지거나 중간에 일찍 나와야 했다. 이런 곤란한 상황은 아내가 회사를 퇴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첫째와 함께 당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서둘러 첫째를 픽업하러 가도 첫째는 늘 어린이집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첫째를 찾을 때마다 '미안, 아빠가 늦었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첫째는 투정 부리기보다는 근처 슈퍼에 가자고 매일같이 졸라댔다. 첫째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던 나는 아들의 고사리 손을 꼭 잡고 슈퍼로 향했다. 다행히도 첫째는 당시의 기억이 없다.


후배들이 나에게 '맞벌이로서 직장생활은 어땠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심장이 쿵쾅 거렸던 순간들은 많았지만 그럴수록 가족들이 더 뭉쳐서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답할 것이다.


직장인 부모들을 위한 여러 제도가 생겨나고 외국계 기업과 일부 혁신적인 국내 기업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직장 문화는 맞벌이 부부가 혼자 힘으로 자녀를 돌보며 회사를 다니는 것이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데 그 주범은 다름 아닌 직장 내 동료들이다.


"팀장님, 오늘 첫째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이에요. 오전 반차 내고 오후 출근해야 할거 같습니다."

"부장님, 남편이 출장 중이라 둘째 돌볼 사람이 없어서 내일 회식은 참석 못할 거 같습니다."

"김 과장, 나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첫째를 픽업하러 가봐야 할 거 같아. 약속한 업무는 컴퓨터 들고 가서 집에서 할게요."


맞벌이 부부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서글픈 것은 주위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를 돌보며 회사를 다니는 것도 두배 세배 힘든데, 주변에선 '너무 가정적이다' '자녀 키운다고 유세 떤다' '거짓말하는 거 아냐?'라는 감정 섞인 말들이 들려온다. 


이실직고하면 나 역시 당시 그런 좁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내가 맞벌이를 하면서도 주위에 비슷한 처지인 직원들을 배려하지 못했다. 참으로 속이 좁았다. 첫 회사는 유독 회식이 잦았는데 12월에는 일주일에 회식이 서너 차례 있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자녀들 핑계(?)로 회식을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누군 회식 가고 싶어서 가나?' '우리 애도 나 기다린다고!'라고 속 좁은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고쳐 먹게 된 것은 아내 좀 더 생각하면서부터다. '내 아내도 회사에서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속 좁은 마음을 가지고 바라봤던 직원들이 결국은 내 아내와 같은 처지였다. 물론 시선을 고쳐 먹고 상황을 바라봐도 현실이 당장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불편함은 온전히 사라졌고 내가 좀 더 포용력이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는 마인드를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후로 10년 넘게 우리 부부는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마주 하지 않았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홀벌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다가 홀벌이를 하면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맞벌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수준의 책임감이 밀려온다. 회사에서 너무 힘든 상황을 겪어 당장 때려치우고 싶어도 딸린 식구들 생각에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다. 배우자를 설득하는 것도 힘들고,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다들 버텨보라고 한다. 나도 두 번째 이직할 때 회사를 먼저 그만 둘 마음이었다. 아내는 퇴사를 보름 정도 남기고 겨우 설득했지만 부모님은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하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퇴근 인증 사진

맞벌이 때든 홀벌이 때든 직장 생활 내내 나를 늘 괴롭혔던 생각이 있다. 바로 '직장 생활하는 내 모습이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였다. 어떤 때는 너무 바빠서 주중에 아이들 얼굴을 못 본 적도 있고, 집에 와서도 랩탑을 열고 회사 일을 하기도 했고, 회사에서 너무 힘든 일이 있으면 집에서도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쉬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도대체 아빠는 왜 저렇게 살까?'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정말 힘든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 새롭게 바뀐 정부 정책으로 인한 시장의 영향에 대해서 조사해서 사장님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해당 내용은 회사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있겠지'정도로 생각했던 것으로 그것을 수치화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아 돈 주고도 사 올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몇 주를 고생해 사장님을 포함한 임원들에게 보고했다. 여러 임원들이 좋았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정작 사장님은 본인이 원하는 것의 절반만 들어 있는 보고라며 평가 절하했다. 사장님은 영향뿐 아니라 회사가 나아갈 방향까지도 구체적으로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는 임원들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었다. 보다 못한 한 부사장님은 사장님에게 '그건 이 자리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보고가 끝나고 친한 상무님은 내게 다가와 '사장님이 다른 마음으로 그런 멘트를 한 거 같다'며 걱정했다.


그날 회사 로비를 나서면서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내가 이렇게 직장 생활하려고 태어났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나마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회사를 위한 내 노력이 결국 회사의 고객인 병원과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정말 헬스케어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일단 아내와 자녀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당시 나는 너무 힘든 날이면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아내와 대화하면서 풀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회사와 일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커서 겪게 될 테지만 적어도 커가는 과정에서 우리 가족의 행복이 일에 좌우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 우리 가족의 행복은 일에 흔들리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직장 일이 힘들수록 나와 아내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이 연장선에서 집에 돌아와서는 직장인 모드를 잠시 끄고 아빠 모드, 엄마 모드를 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둘째 딸을 얻은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확실히 딸은 아들과 다르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빠가 퇴근할 때면 달려와주는 딸 덕분에 집에 가면 직장인 모드에서 아빠 모드로 즉시 변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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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자녀들이 엄마 아빠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인 가족의 행복과 엄마 아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에 합당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알기 원한다. 


아이들이 일할 나이가 되는 10년, 20년 후는 어떨까?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기에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세대와 달리 지금의 자녀들에게 커서 뭐가 되라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부모 세대는 자녀 세대에게 일하는 것이 곧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고, 우선순위가 있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얘들아, 엄마 아빠는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다."




좋은 신호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인식의 변화와 제도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 기업 정서상 아직은 경영진, 부서장의 인식이 중요하다. 우리가 일하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제도를 바꾸고 인식을 바꾸는 데 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하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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