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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Sep 27. 2020

커리어의 피크는 언제일까?

The best is yet to come

오늘 던질 화두는 꽤나 어렵다. 어쩌면 지금까지 썼던 글들과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 갑자기 마음을 후비고 들어온 질문 하나를 풀어내기 위해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질문이다.  


내 커리어의 피크는 언제일까?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만의 답을 찾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었다. 그렇기에 글을 읽기에 앞서 각자 스스로에게도 이 질문을 던져 보길 권한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있다. 


'커리어의 피크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뭘까?' 


이 기준을 알고 수치화할 수 있다면 피크를 판단하는 것은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우선 기준이 될 만한 몇 가지가 떠올랐다. 먼저는 연봉 인상률이다. 연봉이야 연차가 쌓일수록 오르지만 연봉 인상률은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높아지기 때문이다. 좋은 성과를 낼 때가 나름의 피크이지 않을지. 직급은 어떨까? '대리병'이라는 표현처럼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대리, 자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과장, 원숙미를 뽐내는 부장, 직장인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까지 나름의 이유로 서로 피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업무 강도는 어떨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소모가 크고 피, 땀, 눈물을 많이 흘렸던 시기를 피크로 볼 수도 있다. 아, 나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헤드헌터한테 인기 많고 시장에서 부르는 몸값이 치솟을 때도 어떤 의미에선 피크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하나의 기준으로 커리어의 피크를 정의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커리어의 피크는 어떤 모습일까?'


커리어의 피크는 어떤 모습일까?

피크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점 또는 전성기 정도가 될 것이다. 


'지금이 내 커리어의 피크야.' 

'10년 전 그때가 내 경력에서 전성기였지.' 

'나는 네가 지금 직장 생활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일까? 지인 중에 커리어의 피크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떠올려봤다. 의외로 전문직에 있는 분들이 떠올랐다. 의사, 교수로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커리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직장에서 자신의 역량을 100% 이상 발휘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이 커리어의 피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인들은 아직은 피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뭐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마크, 넌 커리어의 피크가 언제였어?'

스스로에게 답했다. '내 커리어에서 피크가 있었나? 아직 안 온 거 같은데?'


사실이다. 아직 내 커리어의 피크는 오지 않았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피크가 있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셋에서 서른넷 사이에 컨설턴트를 하면서 새벽같이 출근해 회사에서 세끼를 먹고 자정 즈음에 퇴근했던 시기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첫째 얼굴을 주말에나 볼 수 있었다. 몸은 힘들어도 내 커리어에서 실력이 한 단계 올라섰던 소중한 시기였다. 지금은 아무리 큰돈을 준다고 해도 그렇게 생활할 수 있는 몸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시기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성장하는 속도로 봤을 때는 피크였다. 그렇기에 그 후에 자연스럽게 내 커리어의 피크로 이어져야 했다. 


그런데 피크는 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뭔가 삐끗했던 걸까? 아니다. 육체적으로, 또 성장 속도로 피크를 찍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내 몸과 마음이 지쳤던 것이다. 또한 이렇게 아등바등해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때문에 나는 피크를 향하되 우회하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워라밸이 좀 더 보장된 외국계 회사로 이직한 것이다. 


이후로 5년 정도 몸은 편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꿈의 직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워라밸이나 복지가 좋았고, 외국계 회사여서 그런지 프로세스와 일하는 방식, 문화에 대해서 배우는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기간 역시 절대 내 커리어의 피크가 될 수 없었다. 왜일까? 내가 고생해서 얻은 보람이나 성취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내 자리를 대신해도 해낼 수 있는 일들을 무난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물론 업무 평가는 굉장히 좋아 연봉 인상률이 가장 좋았던 기간이었지만 커리어의 피크를 향해 달려가는 징검다리였을 뿐이다.   


지금도 내 커리어의 피크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하는 것은 커리어의 피크는 에베레스트와 같이 뾰족하지 않고, 평원의 언덕처럼 완만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피크에 도착해도 내가 지금 피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을 것이고, 피크에서 내려올 때도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 내려오고 있는 건지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커리어의 피크는 고봉과 같이 뾰족하지 않고 언덕처럼 완만할 것 같다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면 커리어의 피크를 판별하는 걸 더욱 헷갈리게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억울함'과 '두려움'이다. 


그렇지 않을까? 만약 나이 사십이 되어서 커리어의 피크를 생각한다 치자. 생각해보니 이미 내 커리어의 피크가 지난 것 같으면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억울할 것이다. 반대로 아직 피크가 오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두려울 수도 있다. 이 억울함과 두려움 가운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아직 내 커리어의 피크는 오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다. 아직 제대로 된 커리어의 피크를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시점이 올 것이라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기대하는 피크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험난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내리막도 있겠지만 계속 내려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기분 좋다. 


그리고 언덕이 됐든 에베레스트가 됐든 커리어의 여정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피크에 올랐으면 내려갈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려가기 싫다고 계속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려가는 일이 씁쓸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커리어의 피크를 확실히 찍어볼 용기도 필요하다. 아무리 언덕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일은 끈기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피크를 향해 있다면 한번 더 박차를 가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이 커리어의 피크에 있을 때 함께 축하해주고 즐길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피크에 있을 때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지 않은가? 모두 경험해보지 않은 것 투성이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내 커리어의 피크가 지금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앞으로 더 높은 곳을 경험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의 커리어의 피크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문득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 재선 취임 연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The best is yet to come." (최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 커리어의 피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이 지름길일 수도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용기를 갖고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뎌 보자. 




몇 년 전 인생 그래프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인생을 그래프로 표현하는 것이다. 인생의 바닥을 쳤을 때는 한 없이 내려갔다가 좋은 일이 팡팡 터지면 한 없이 올라가기도 한다. 아래는 오늘 그려본 내 인생 그래프다.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면 깨닫는다. 커리어는 인생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커리어의 피크를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인생의 피크를 경험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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