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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화 Jun 20. 2019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라 해도 각자가 기혼인지, 미혼인지에 따라, 같은 기혼이라도 아이가 있는지 없는 지에 따라, 같은 엄마라 해도 아이가 하나인지 둘인지에 따라 여성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남성의 운명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선에 따른 변화의 폭을 비교해보면 남녀의 차이가 월등하지 않을까요. 대체로 아빠들은 맘카페 같은 아빠카페를 수시로 드나들거나, 학부모 단톡방에 들어가야 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저는 최근 1인 기업가 여성 4분과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거기서 저만 아이가 있고 모두 다른 좌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비슷한 또래이고 하는 일도 비슷한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방향이 저와 얼마나 다른지 만날 때 마다 놀라게 됩니다. 주로 동네 엄마들과 엄마인 고객들과 엄마인 동료들과 만나는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현충일 저녁도 괜찮아요. 그 때 미팅할까요?” (‘헉 전 그 때 가족과 보내야 해요’)
“저 요즘 주 5일 새벽 수영 시작했어요" (‘저는 주 5일 아침 등원해요’)
“저는 오늘 저녁까지 시간 괜찮아요" (‘전 이제 불나게 애 데리러 가야해요’)
“우리 다음에 2박 3일짜리 숙박 프로그램 만들어봐요" (‘하아...애는 어디 맡기지?’)




‘아 그래 나도 대학생 때는,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었지…’ 하는 느낌들이 이따금 스쳐지나갑니다. 아무런 제약이 없는, 모든 시간 모든 결정이 내 것인 그런 일상. 그래도 뭐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얼마전 서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 대표님이 “저 당분간 여기에 없어요. ~일 부터 ~일까지는 부산에서 행사가 있고, ~일부터 ~일에는 산티아고에 가고요” 거의 2주 동안 자리를 떠난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부러움이 쓰나미처럼 몰려 왔습니다. 



와...
완전한 떠남.
완전한 자유.

나에게는
언제 그런 시간이 가능할까...?




저에게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었던 것일까요.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아와서 동생에게 ‘그 분이 부러웠다'는 얘기를 하니, “뭐가 부러워. 남편이 애들 데리고 캠핑 가서 혼자 있어보니까 너무 무료하던데, 나이 들고 혼자 살면 같이 놀 사람 없어서 외로울 거 같애"



“같이 놀 사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면????” 나의 탈출 욕구가 이해 받기는 커녕 면박을 당한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동생에게 유치한 반박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서 엄마로서의 삶을 부정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엄마로서의 삶은 되돌이킬 수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를리가요. 아이가 제게 준 행복과 웃음과 추억을 엄마인 제가 모를리가요.



미혼이 부럽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엄마로서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듯이, 엄마로서의 삶이 너무 좋아서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고만 싶은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와 충만한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과,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두 마음이 모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그것을 알면서도 지금의 내 삶에 더 충실한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산티아고. 저도 정말 언젠가 걸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순례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자유는 내가 언제든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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