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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Oct 18. 2022

카카오 먹통 사태를 보며 미국에서 든 생각

D+75 (oct 15th 2022)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 등의 개인 채널 조회수를 확인했다. 마치 방송국이나 제작사 시절 시청률을 확인하듯. 아직 웹 작가, 크리에이터로서 성과를 거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조회수의 등락이 매일 글쓰기와 콘텐츠 제작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은 브런치와 티스토리 블로그 모두 먹통이다. 무슨 일이지?


한국 포털에 들어가 뉴스 기사를 훑어보는데,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 불이 났단다. 카카오 데이터 센터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내가 4개월 전까지 다니던 회사에서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건물이다. 내 자리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건물. 그런데 그 건물 안에서 불이 났고, 이로 인해 모든 카카오 서비스가 중단됐다고 한다.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 동포나 유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네이버나 카카오의 서비스에 종속된 삶을 살지는 않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은 듯하다. 카카오톡이 안 되는 것은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거기까지다. 내가 브런치 글쓰기와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고 있으니 먹통이 되어버려 글을 못 올리긴 했지만, 그 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 쓰던 카카오 맵이나, 카카오 T, 카카오페이 등은 휴대폰에서 삭제한 지 오래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선 한두 개의 큰 사기업 서비스가 생활의 대부분을 편리하게 돕고 있다. 그래서 그 기업들의 서비스가 마비되기라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겪으리란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당장 불과 몇 달 전 한국에서의 생활 단 하루만을 되짚어봐도 카카오, 혹은 네이버 서비스 없이 단 하루를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나 싶다. 출근길 내비게이션, 직장 동료 간 점심값 나누기, 외근 택시 호출, 현지 버스 도착 시간 확인, 생일인 지인 기프티콘 전송, 무엇보다 꼭 없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카톡 업무 지시까지. 또 일상에서 뉴스나 쇼핑이나, 블로그, 메신저, 카페, 밴드 등 수많은 서비스가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이 회사들의 서비스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몇몇 인터넷 대기업이 정보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모습에 걱정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공적 서비스 영역까지도 너무 깊게 침투했다. 나의 개인 정보와 인증을 기반으로 한 모든 정보 서비스의 흐름이 몇 개의 기업 서비스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내겐 꽤나 기형적이었다. 어쩌면 나의 민감한 개인 정보들이 사기업의 서버와 망을 거쳐서 공적 영역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가. 전에는 단순히 생활 편의 서비스에만 연결되어 있던 두 회사의 서비스가 이제는 공공 서비스와 더불어 본인 인증 로그인, 은행 업무에 결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어 버렸다. 한 사기업의 서비스 중단이 단순히 불편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서비스 불통에 금전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민감 정보와 서비스까지 사적 기업에 의존하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이 정보의 통합화를 이루거나 촘촘한 그물망처럼 개인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사회는 아니어서 한 기업의 서비스망 불통이 많은 불편함을 야기하지는 않을 듯하다. 구글이나 애플의 서비스가 촘촘하게 생활을 침투하고 있지만, 내 민감 정보를 요구하거나 사용하는 서비스는 없다. 구글이나 애플의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서비스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불편함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공적 서비스 같은 것들은 온라인이 너무 불편하기만 하다. 차라리 대면 서비스가 편할 정도다. 이번 사태는 어쩌면 대한민국이 IT 강국이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인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IT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뒤통수를 맞았다고나 할까? 미국 같은 나라는 워낙 온라인, 모바일 서비스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어서, 이런 사고가 날 확률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카카오 기업에서 서버를 분산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가 난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크다. 데이터를 운영하고 이를 분산 보관, 송출하는 시스템은 상식으로 단순히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 같은 비전문가가 무언가 첨언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듯싶다. 하지만 이번 일은 개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개인 정보와 민감 정보, 그리고 중요한 사적 지식 재산을 분산 보관 및 백업하는 습관이 개인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과 동영상 같은 개인적인 가치가 있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비밀번호들, 인증 수단, 결재 수단도 중복, 백업 보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얼마 전 미국에 이주하면서 각종 민감 정보를 한 번 싹 정리하긴 했는데, 해외 송금 창구를 카카오 뱅크로 설정했던 것이 조금 우려스럽기는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백업 플랜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자산이 많지도 않고 송금할 일도 많지는 않지만, 사람 일은 모르지 않는가. 그 외에도 다시 한번 우리 가족의 민감 정보들을 백업하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hoto by Clayton Robbi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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