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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Nov 16. 2022

100일간의 미국 정착, 우리는 정착했을까?

D+100 (nov 9th 2022)

미국에 처음 도착한 날이 2022년 8월 1일, 그날로부터 100일이 지났다. 정확하게 100일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지만, 미국 정착에 필요한 여러 세팅을 마무리하는데 100일 정도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얼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든 미국 생활의 세팅이 마무리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달력을 보니 미국에 온 지 100일이 되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벌써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상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이주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출국하기 일주일 전부터다. 우리 가족의 귀한 시간을 잘 남겨놓고 싶었고, 사진도 동영상도 좋지만 당시의 생생한 감정을 잘 남겨 놓고 싶었다. 늘 작심삼일에 용두사미, 계획만 거창하게 하고 흐지부지 되는 일이 많았던 터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막연했는데, 그래도 100일을 채웠으니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출국하기 전 일주일간, 미국에 가기 전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던 여러 일들을 급하게 처리했던 기억들이 스친다. 은행 업무를 보고, 관공서 업무를 처리하고, 한국에 남은 마지막 부스러기들을 모아서 정리하는 기간이었다. 유일한 가족인 아내 외할머니를 처제와 함께 찾아뵙고, 월세 살이 집을 비워주고, 여기저기 흩어진 돈과 통장들을 정리하고, 3년 넘게 사용하던 장기 렌터카를 반납하고, 주민 등록을 정리했다. 무엇보다 집안 가득 쌓아두던 수많은 물건들을 팔고, 버리고 했다. 그리고 가방 열두 개로 정리한 짐을 싸들고 단란한 세 가족이 비행기에 올랐다.


실제 2박 3일간의 여정이었던 미국으로의 출국 일정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인천의 한 호텔에서 하루 숙박, 샌프란시스코로 열두 시간 비행,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열두 시간 대기, 그리고 다시 동부 도시로 다섯 시간 비행. 일정도 힘들었지만, 그 사이사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있었다. (이 글 참조)


아내와 아이가 학교 개강/개학을 할 때까지, 나는 모두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집과 계좌, 면허, 차, 각종 유틸리티 등을 처리해야 했다. 생각보다 아날로그 국가인 미국에서 팬데믹 덕분에 디지털로 절차가 간소화되어 편해진 것도 있었고, 아이가 첫 등교를 하기 직전, 자동차 구매를 끝내는 것으로 이주와 정착에 관련한 모든 작업들을 아슬아슬하게 끝마쳤다. 아이의 첫 등교와 아내의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나의 차량 수령일이 죄다 겹쳐서 고생했었다. 아내는 우버로 아이를 픽업했고, 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예약한 차 대신 2순위로 봐 두었던 차로 변경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정상적으로 아이를 라이드 해 주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가 학교를 시작한 이후로는 미국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10년 만에 시작한 새로운 미국 생활은 일부는 익숙하고, 일부는 낯설었다. 미국도 10년 동안 변했고, 나도 10년 동안 변했다. 캘리포니아와 펜실베이니아의 차이도 있었고, 30세의 나와 40세의 나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럭저럭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이번 주, 드디어 정착의 마지막 종착지라 생각했던 반려견 입양을 마무리했다. 디디를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네 식구의 미국 생활이 비로소 시작한 듯하다.


지금이야 생각해보면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곳에 정착한 것 같지만, 하루하루가 쉬운 날이 없었고, ‘이게 잘 안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벌렁벌렁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녔다. 나도, 아내도, 그리고 아이도 각자 두세 번 이상은 눈물을 펑펑 흘리는 날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한, 예상치 못한 여러 시련에도 무사히 잘 이곳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아내는 박사과정 1학년을 잘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동급생이나, (나이 어린) 선배들, 그리고 교수들의 험담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을 보면,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연구 과제를 찾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앞으로 수년간 반복할 일이니 (나만) 그러려니 한다. 


아이도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아이가 영어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터라 안심하면서도, 한국에서 남들만큼 사교육을 시키진 못했어서 얼마나 통하려나 걱정도 됐었는데. 너무나도 다행이다. ESL 선생이 1월에 있을 ESL 자격시험도 통과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니, 아이도 너무 잘해주고 있는 것 같다.


난… 나도 잘하고 있다. 주부 생활도 어색하지 않다. 아이도 아내도 학교에 가고 나면, 청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며 CF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바쁘다. 집안일도 집안일이지만,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 제작 등으로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작가라는 타이틀로 불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나와 아내는 여행처럼 사는 삶을 싫어한다. 어서 빨리 일상의 권태를 누리고 싶다. 아직은 삐걱댄다. 완전한 일상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Photo by zero ta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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