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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Nov 01. 2022

아이와 박물관 가는 돈이 그리 아깝더냐?

D+86 (oct 26th 2022)

며칠 전부터 학교에서 오는 이메일 가정통신문에서 이번 수요일에는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다는 안내를 보았다. 갑자기 뜬금없이 학교를 가지 않는다기에 무슨 공휴일이나 명절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의 22-23학년도의 첫 번째 분기가 끝나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지만, 선생님들은 근무하는 날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중간 성적을 내고 분기에 대한 행정처리를 하는 날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뜬금없이 평일에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니, 아이와 함께 뭘 하고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주말에는 어디를 방문하든 사람이 많아 쉽게 지칠 수 있으니 인기가 많은 곳은 잘 방문하지 않게 되는데, 이번엔 평일인데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니 그런 곳을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와 아내의 생각이 같아서 주초부터 어디를 방문하는 것이 좋을지 검색을 해 봤다. 우리가 사는 곳이 대도시는 아니어서 방문할 만한 곳들이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박물관이나 동물원 같은 곳이 방문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비용인데, 하나같이 나에게는 꽤나 비용이 높아 보였다. 물론 객관적으로 굉장히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어디를 가든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또 미국에서는 학생에 대한 할인이 잘 되어 있어서, 지역 대학교 박사 과정인 아내는 무료였다! 다만 주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부담이 되었다. 불과 몇 시간 동안에 10만 원 안팎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최근에 월동 준비다 뭐다 해서 생활비 지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경험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물건을 사는 것 외에 무슨 단발성 클래스, 박물관, 미술관, 공연 같은 곳에 쓰는 비용이 내게는 많이 낯설다. 물건을 사면 그 물건이 남지만, 경험은 사라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물건 구매보다 다양한 경험에서 오는 행복감이 더 크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지만, 내게는 아직도 그런 행복은 왠지 사치 같다.


그럼에도 이번엔 용기(?)를 냈다. 매번 가는 것도 아니고, 모처럼 가는 건데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주말마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너무 집에만 있거나 집 앞에만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매주 가는 것도 아닌데 너무 인색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과감(?)하게 세 식구 함께 시내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시내로 출발했다. 딸아이는 모처럼 외출에도 시큰둥했다. 늘 저런 식이다. 가면 너무나 즐거워할 거면서 꼭 가기 전엔 저렇게 가기 싫어하고, 시큰둥한 표정이다. 마침 자연사 박물관은 아내의 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아내를 학교에 라이드 해 주면서 늘 지나던 건물이었다. 주차를 하러 주차장에 들어갔다. 아, 주차비. 미국은 주차비가 비싸다. 아내 학교조차도 30분이 지나면 9불부터 시작한다. 다행히 여긴 정액제로 10불이다. 그래. 시내에 왔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자연사 박물관은 매우 좋았다. 미 대륙이 매우 광활해서 그런지 지구과학 시간이나 지리 시간에 배웠던 여러 가지 지층이나 화석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전시들이 이 작은 도시의 자연사 박물관에도 매우 퀄리티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지역의 자연사조차 매우 심도 있게 연구되어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공룡 화석도 매우 거대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도 있었고, 다른 지역의 화석도 있었다. 신기했다. 한국 회사에서 공룡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던 중에 퇴사하고 미국에 왔던 터라 이런 공룡 전시에 더 관심이 갔다. 공룡 뼈 모형으로 실제 크기의 브라키오사우루스나 티라노사우루스를 전시한 것은 정말 근사했다. 또 북미 대륙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전시도 보았다. 동물원에서 살아있는 동물들을 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이런 실제 크기 모형 전시도 좋았다. 동물원에 대한 여러 가지 동물 복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이런 전시를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도 그런 논란은 피하면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넓은 공간의 다양한 전시에 감탄하면서 둘러보는데, 한 전시관에서 추가 비용이 있는 전시를 하고 있었다. 동물의 몸 안의 다양한 기관들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체험형 전시였다. 최근 아이가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 체험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다만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여기를 오기로 결정한 것조차 큰 용기였는데… 하지만 아이는 들어가고 싶어 했고,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처음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다양한 체험형 전시가 제법 잘 되어 있었다. 비슷한 체험을 과천에 있는 서울 과학관에서도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체험은 보면 무척 실망스럽지만, 직접 경험해 보면 잘했다 싶다.


공간이 넓고 다양한 관람 시설과 체험 시설을 마치고 나니 제법 피곤해졌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사실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지만 평일이어서 아내는 집에 돌아가 학교 일을 해야 하기에 슬슬 정리하고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모두 전시실에서 나오는데, 아이가 기념품숍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뭐? 기념품까지 산다고?’


덜컥 이 생각부터 들었다. 이미 오늘 돈을 많이 썼는데, 기념품까지 사야 해? 하는 생각이었다. 표정이 싹 굳어졌다. 아내는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작은 기념품이나마 사줬으면 했다. 내 입장에선 이미 추가 관람료까지 지불한 터라, 기념품은 구매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미 추가 지출이 많았으니 이번엔 기념품 만은 스킵했으면 했다. 하지만 잔뜩 실망한 아이의 표정에 결국 아내의 뜻대로 작은 기념품을 구매했다. 집에 가서 아이의 용돈에서 차감하기로 하고.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비용이 늘어나니, 내 마음이 딱딱해지고 까칠해졌다. 씀씀이에 대해 신경 쓰는 건 나 혼자뿐인 듯했다. 사소한 행동과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는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냉랭했다. 차 안에서도 이렇다 할 대화도 없었다. 돌아와서 수제비도 함께 끓여 먹고 했지만, 내 마음도 아내의 마음도 불편했다. 모처럼 나선 나들이가 엉망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아내와의 대화(를 가장한 다툼) 끝에, 내 문제를 인정했다. 돈을 아끼고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못 해줄 수도 있지만, 한 번 해주기로 했으면 그다음엔 그것을 충분히 즐기게끔 해 줬어야 했다. 아이는 돌아오는 내내 냉랭했던 나와 아내의 분위기 때문에 좋았던 기분이 가라앉아 버렸고,  결국 잠자리에 들면서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이래서 내가 어디 가는걸 별로 안 좋아하는 거야.’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고 그것에 맞추어 생활해야 하지만,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부모로서 감당해야 했다. 아이가 실망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어쩌면 나쁜 부모가 되기 싫었던) 나의 회피 본능이 경제적 어려움을 아내와 아이의 철없음으로 바꾸려 했던 것이다. 참 못난 행동이었다.


어쩌면 타지 생활을 하는 내내 이런 경제적 어려움과 갈등을 지속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점점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자격지심을 낳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워낙 자격지심이 있는 나로서는 또 어떻게 감정이 상해서 다툼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런 약한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항상 자각하고 있으면서 조심해야겠지.


Photo by Laurie Byr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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