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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Nov 04. 2022

내 헤어 디자이너는 미국 대학원생

D+89 (oct 29th 2022)

십 년 전 한국에 돌아오게 됐을 때,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다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미용실에 간다는 것은 사치 중에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원래 비용이 싸지 않은 데다 디자이너에게 팁까지 줘야 하니 선뜻 미용실을 가기가 쉽지 않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영어로 머리를 어떻게 잘라달라고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나는 미국 유학을 이십 대 후반에 간 것이어서 일반 생활 영어 실력이 매우 부족한 편이었는데, 특히 자주 방문하지 않는 미용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말들을 잘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시절에도 미용실에는 정말 잘 안 가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유학 시절 6년을 미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미용실에 가본 적이 없다.


미용실에 가지 않고 머리를 자르려면, 주변에 잘 자르는 친구나 후배에게 부탁하거나, 클리퍼와 같은 도구를 구매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이십 대 때는 주로 두 가지 방법을 동원해 머리를 손질했는데, 하나는 그냥 무작정 기르기, 다른 하나는 클리퍼를 이용해 까까머리로 밀어버리기였다. 두 달이고 세 달이고 주야장천 다듬지도 않고 기르다가, 6밀리미터로 확 밀어버리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유학 시절의 사진을 보면 덥수룩하거나, 까까머리 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번에 다시 미국에 와서도 미용실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래도 남자는 머리를 자주 자르게 되는데, 그때마다 미용실에 간다면 정말 거덜 날 것 같았다. (사실 아직 정확하게 비용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그냥 길러 보려고 했다. 나이 든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길러서 묶고 다니는 것도 나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들은 알다시피, 짧은 머리를 길게 기르다 보면 일명 ‘거지 존’에 다다르게 되는데, 남자로서는 그 기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머리가 묶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당이 되지는 않는, 그런 애매하게 길어서 보기 싫은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내는 몇 주 전부터 머리를 잘랐으면 좋겠다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말 한 번 길러서 묶어보고 싶었기에,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점점 잔소리가 심해졌다. 자기가 예쁘게 잘라줄 테니 머리를 자르자는 것이다. 아내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머리를 기르겠다고 고집을 부릴 남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결국 머리를 길러 묶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주말인 오늘을 디데이로 삼은 나는, 점심을 먹은 뒤 마침내 아내에게 머리를 자르자고 했다. 아내는 눈을 반짝였다. 아내는 귀지를 파달라고 부탁하거나, 피지를 제거해달라고 할 때, 항상 눈을 반짝였다. 뭔가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하게 할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우리 집의 다른 곳엔 모두 카펫이 깔려 있어서, 안방 화장실에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아내와 나 모두 바로 빨 옷으로 갈아입고, 난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썼다. 온몸에 머리카락 범벅이 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나나 아내 모두 거지 존에 돌입한 전체 머리의 기장을 잘라주겠다는 정도의 계획만을 가지고 머리 자르기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숱 치는 가위가 있었기에 어렵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예상은 빗나갔다. 내 머리는 생각보다 전방위적으로 길었고, 나는 숱이 많은 스타일이다. 기장을 약간 정리하고 숱을 치는 정도로는 수습이 어렵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투 블록으로 잘라 버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집 근처에 편의점(CVS)이 있으니, 거기에서 클리퍼를 사 오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는 알겠다며 CVS로 향했고, 나는 아내가 다녀오는 약 20여분 동안 영구 머리를 하고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쓴 채 화장실에 주저앉아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는 거의 뛰다시피 해서 편의점에 가 클리퍼를 사 왔다. 십 년 전에도 가지고 있던 같은 브랜드의 같은 모양 클리퍼다. 발전이 1도 없이 또 구닥다리 싸구려 클리퍼를 살 수밖에 없는 내 현실이 조금 서글프다. 뭐, 미용실조차 마음껏 가지 못하고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있는 내 꼴이 더 서글프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내 머리를 수습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


난 과감하게 옆머리를 6밀리미터로 밀어버렸다. 한국에서 미용사들이 투 블록을 자르는 것을 보면 항상 돈이 좀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저거 그냥 옆에 밀기만 하고 위는 숱만 치는 건데, 그래서 20분도 안 걸리는데, 돈은 수만 원을 써야 하다니. 그때마다 이리저리 시뮬레이션은 했었기 때문에 과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뒷머리를 만지다가 헉했다. 아내가 클리퍼를 사러 가기 전에 가위로 이미 뒷머리를 꽤나 위까지 자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미 옆머리는 밀어버린 상태인데, 뒷머리를 올려친 상태라면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머리 모양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약간 울상이 되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내는 이미 머리 모양이 괜찮으니 마무리만 잘하면 될 것 같다고 한다. 자기 머리가 아니라고 말을 쉽게 하기는. 좌우 대칭도 안 맞고 엉망진창이란 말이다! 나는 일단 클리퍼로 좌우 옆머리를 깨끗하게 정리하자고 했다. 나머지는 아내에게 맡기기로 했다. 반 포기 상태로. 내가 어쩔 수 없는 게, 일단 보이질 않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클리퍼로 옆머리 정리를 마치고, 아내는 일반 가위와 숱 가위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윗머리와 뒷머리, 그리고 앞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양 옆은 약간 투 블록과 같은 형태, 뒤는 2/3 정도까지 올려친 머리 형태가 됐다.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렇다. 괜찮았다. 남자들이 투 블록 머리를 하면 약간 아쉬운 게, 뒷머리가 약간 호섭이 머리가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아내도 내가 투 블록 머리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투 블록 유행이 지나기는 했지만, 집에서 머리를 다듬기에는 이게 더 쉬울 것 같아서 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뒷머리를 제법 그럴싸하게 올려 치니, 오히려 삥 둘러 투 블록을 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거봐! 내가 뭐랬어? 나 이런 거 잘한다니까.’


능력자 아내를 둔 덕에 한국에서 비싼 돈 들여 머리를 했을 때보다 훨씬 단정하면서 깔끔한 스타일이 완성됐다. 보는 사람마다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머리를 참 잘 잘랐다고 칭찬해 준다. 그때마다 능력자인 아내가 잘 잘라줬다고 자랑했다. 사실 이런 칭찬이나 자랑이 쑥스럽기도 하고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아내 자랑도 좀 해야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아내 덕분에 미국까지 와서 일도 안 하고 편하게 살고 있는데, 내 머리를 손질해 주는 것도 미국 박사 과정 대학원생 슈퍼 능력자 아내다. 나 참 복 받은 사람인가 보다. 아내는 특별한 머리 손질도 안 하고 새벽같이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오늘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아내를 위해 고기를 좀 구워야겠다. 물론 그 고기조차 내가 거의 다 먹는 건 비밀이다.


Photo by Agustin Fernand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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