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성 편향의 극복
낙천적인 사람은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해 기대감을 가진다. 흔히 낙천성과 비관성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물이 반쯤 담긴 유리잔을 보며 반응하는 태도로 나타낸다. 목마른 데 물이 반쯤 차있는 잔을 보면 낙천적인 사람은 ‘오, 물이 반 잔이나 있네!’라고 반응하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반잔 밖에 없잖아?’라고 반응한다. 같은 조건이나 상황에 대해 만족도는 낙천성 정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에 따르면, 낙천적인 사람은 좋은 일이 한 가지 생기면 그것을 영속적이고 보편적으로 생각한다. 좋은 일이 생긴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 보가 자기 능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반면, 나쁜 일은 일시적이고 어쩌다 일어난 특수한 것으로 생각한다. 로널드 레이건이 그랬다.
레이건의 낙관적 리더십
미국의 40, 41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1981년 대통령 취임 69일째 되던 날 한 호텔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올 때였다.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존 힝클리라는 청년이 암살 시도로 총격을 가했다. 대통령 수행원 3명이 쓰러졌고, 레이건도 여섯 번째 총알을 폐에 맞아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혈압이 60까지 떨어지고 다량의 출혈로 위험한 상황까지 갔다. 그의 얼굴에서 산소마스크를 벗기자, 그는 특유의 환하고 조금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의료진에게 농담을 걸었다.
“당신들이 모두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민주당원이었던 지오다노라는 의사는 공화당 리더인 대통령의 말에 걸맞은 답을 했다.
“대통령님, 오늘은 우리 모두 공화당원입니다.”
레이건은 수술 뒤에도 고열을 앓고 갖은 항생제를 먹어야 했지만 유머로 의료진을 즐겁게 했다. 저격을 당해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레이건의 태도에 그에 대한 지지율은 83%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정치 현장은 그의 낙천적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이듬해 지지율은 32%로 떨어졌다. 심각해진 측근들에게 비서진들에게 레이건은 말했다.
“걱정들 하지 말게. 그깟 지지율, 총 한 번 더 맞으면 될 것 아닌가?”
그의 쾌활한 태도와 긍정적 리더십은 골치 아픈 정치 현안과 실무 행정을 처리에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는 어느 테러 집단과도 협상하지 않는다 장담했지만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고 그 돈으로 니카라과 극우 집단을 지원했다. 이른바 이란-콘트라 게이트이다. 레이건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법정에서 증언해야 하는 등 퇴임 후에도 수모를 겪었다.
낙관적인 태도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만 부정적 문제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는 점을 알아야 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
비현실적 비전이나 희망에 취해 있던 사람은 비관적 현실에 부딪힐 때 오히려 더 크게 절망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로 알려진 사건은 그런 교훈을 일깨운다. 미 해군 조종사였던 짐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서 아군의 포격으로 격추되어 적 포로수용소에서 8년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베트콩 군부가 포로를 정당하게 대우한다는 선전 도구로 그를 악용하려 하자 그는 자해까지 하며 저항했고, 포로들이 고문과 고독을 극복하도록 도왔다. 석방 후 그는 명예훈장을 받았고 해군 중장까지 승진하여 해군전쟁대학 학장을 지냈다. 리더십 연구가 짐 콜린스가 ‘어떤 사람들이 포로수용소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는가?’라고 그에게 물었다.
“낙관주의자들”
스톡데일은 한 마디로 답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기대했던 낙관주의자들은, 부활절에도, 추수감사절에도 석방되지 않자 크게 상심하며 죽어갔다. 오히려 크리스마스에도 못 나간다는 현실적 판단으로 기대치를 낮추고 마음을 다 잡은 현실주의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2차 대전 중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 갇혔던 유대인 집단에서도 일어났다. 본인이 수용소 생활을 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1주일 동안 사망자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전했다. 근거없는 기대에 매달리면 그것이 현실과 어긋날 때 절망이 크다. 죽을 수 있을 만큼 그 부작용이 크다.
낙관적 편향의 극복
낙천적인 사람은 성공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한다. 부정적 결과의 가능성을 적게 보므로 그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를 “낙천성의 편향(optimistic bias)”라고 한다. 정부조직이나 한 회사의 성과를 기획할 때뿐만 아니라 가계를 꾸릴 때도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 성공 가능성만 보고 관광객을 끌려고 지방 자치기관마다 축제를 벌이거나 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호화 청사를 지었던 공무원들, 부동산 경기 폭등을 기대하고 이른바 “영끌” 대출로 고액 아파트를 샀다가 금리 인상으로 급여 절반을 이자로 내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편향에 이끌렸던 것이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현실 앞에 끼인 거품을 걷어내고 잘못되었거나 잘못될 가능성을 보다 정확히 집어낸다. 이를 비관적 실상 (pessimistic reality)라고 한다. 큰 일을 할 때에는 사전에 비관적 실상을 비춰보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낙천적인 사람과 깐깐하고 비평적인 사람이 각각 상반된 시각을 제시하고 그 균형에 맞는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낙천적인 사람은 긍정적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보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비관적인 사람은 현실 속의 잠재적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만 발전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한 개인의 낙천성 혹은 비관성의 정도를 파악하여 그 자신의 맹점 (blind spot)을 인식할 때 균형된 시각을 유지할 수 있다. 낙관성은 좋은 것이고 비관성 혹은 비평성은 부담스러운 성격으로 인식하는 구분은 합리적이지 않다. 낙관성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서로 손가락질하지 않고 두 시각의 균형을 이루면 큰 시너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