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스(Vice)>에 대한 후기 (스포일러 주의)
1960년,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이라는 이름의 독일인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나치(Nazi)에서 장교를 지냈으며,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총괄하는 사람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를 처벌하기 위한 재판을 열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의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그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가게 된다. 유태인들에게는 악마와 다름없었던 그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재판이 시작되고, 아이히만이 입장한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아렌트는 그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모습은, 매우 평범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죄를 전부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은 그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명령을 안 따랐으면 자신이 죽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미국으로 돌아온 아렌트는 이에 영감을 받아 글을 쓰게 되는데, 그 책이 바로 '예수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이고, 여기서 유래한 가장 유명한 경구가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악'이라는 것은 정말 이상하고, 난폭하고, 잔인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악인(惡人)'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관계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라고 그녀는 얘기한다.
영화 <바이스(Vice)>에 등장하는 '딕 체니(Dick Cheney | Richard Bruce Cheney, 1941~)'가 이에 부합하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부시 대통령(George W. Bush, 1946~) 시절 부통령이었으며, 막강한 권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매우 평범하다 못해 한심하다. 음주운전에 걸리고, 쌈박질하고, 여자 친구한테 혼나기까지 한다. 여자 친구한테 제대로 혼나고 정신을 차린 체니는 보좌관으로 의회에 입성하는데, 여기서도 그의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흡사 처음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그 역시 사명감과 직업의식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상관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 1932~)'를 만나면서, 그는 점차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공화당의 승리를 위해 어떠한 짓이든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수를 쓰는 그의 모습을 보면, 과거의 그 순수하고 혈기 넘치는 청년의 모습은 어디 갔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행동들 때문에 그를 이상하고,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치 외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 역시 평범한 가장이며,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그의 언어에서는 범죄자나 악인이 쓸 법한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당당하게 얘기한다.
"당신들이 선택해서 당신들을 위해 일한 것이 나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선택했기에 나는 당신들을 위해 일한 것뿐이라는 이 말이 오싹하게 들리는 이유는 세 가지 일 것이다.
첫 번째, 절대 권력이자 악으로 군림하던 그의 모습과 행동이, '국민들을 위해 일한 것'이라는 '평범하고 당연한' 동기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두 번째, 딕 체니는 자신의 행동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평범하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세 번째, 딕 체니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 섬뜩함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보는 '악인'(범죄자, 정치인, 기업인 등)들이 처음부터 '악인'으로 태어난 것일까? 그들은 과연 어떤 믿음에 경도되어,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며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