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m² 의 기묘한 열망
"야 우리 갇힌 거 아니냐?"
솔직히 말해보자. 여러분 창밖을 보라. 저기 솟아 있는 초고층 아파트들, 해운대의 마린시티나 엘시티 같은 유리 궁전들, 그리고 전국을 덮은 신도시의 똑같은 성냥갑 타워들. 이 모든 게 거대한 '콘크리트 미로'같지 않은가?
"어쩌면 우린 스스로를 울타리 안으로 가둬 버린 건 아닐까?" 이 질문은 꽤 섬뜩하다.
우리 주변은 좁은 대지 위로 건물이 촘촘하게, 아주 빽빽하게 솟아 있다. 밀집도가 높을수록, 옆집과 부딪힐 듯 가까울수록, 우리는 오히려 이게 바로 대박! 이라며 환호한다. 이토록 좁은 땅, 84m²라는 숫자 하나에 왜 그리 목숨을 거는 걸까? 왜 탁 트인 자연경관이 아니라, 옆집 발소리가 들릴까 봐 조마조마한 콘크리트 탑을 선택할까?
이 현상을 '한국인의 아파트병'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 거대한 울타리 안의 새로 만들었다. 이 글은 그 울타리가 왜 생겼고, 왜 우리는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지, 아주 재미있고 솔직하게 파헤쳐 볼 것이다.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황금 티켓이었다
우리가 84m²에 열광하는 이유, 첫 번째는 아주 단순하다. 아파트는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는 황금 티켓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똑똑한 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렀다. 유럽에서 아파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의 역사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왜일까.
1970년대, 80년대 경제가 급성장할 때, 정부는 주택 부족을 해결해야 했고,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었다. 이때 아파트는 새롭게 잘 사는 도시민의 상징이 되었다. 주택에 살면 가난한 이미지가 있었지만, 아파트에 산다는 건 '나도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는 뜻이었다. 일종의 신분 상승 명함인 셈이다.
한국 아파트의 가장 기이한 점은, 이게 부동산이라는 딱딱한 이름보다 움직이는 현금(유동성 자산)에 가깝다는 것이다. 땅(토지)보다 건물이 더 비싼 이 희한한 구조! 청약만 당첨되면 로또처럼 큰돈을 벌 수 있었고, 필요할 때 언제든 팔아 현금화하기 쉬웠다. "아파트만 사놓으면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라는 집단적 주문이 온 국민의 뇌리에 박혀버린 셈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하자, 아파트는 돈 버는 수단을 넘어 내가 계층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패가 되었다. 만약 저 84m² 아파트를 갖지 못하면, 내 자녀는 영원히 좋은 학군에 못 들어가고, 나는 사회적 지위에서 밀려날 것 같은, 대규모 불안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결국, 우리는 자유로운 마당 대신 안전한 콘크리트 금고를 선택한 것이다.
'요새' 아파트, 우리들만의 비밀 왕국
우리가 왜 넓은 마당을 포기하고 좁은 층간 소음 속에서 살기로 했을까? 건축학적으로 보면, 아파트 단지는 도시의 혼란 속에서 우리만을 위한 완벽한 요새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 설계에는 근린주구* 이론이라는 이론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가 아무리 복잡하고 더러워도, 우리 단지 안만큼은 깨끗하고 편리하게 만들자!라는 생각이었다. 마치 도시 속 작은 왕국을 만드는 것이다. 복잡한 주택가와 달리 지하 주차장이 여유롭고, 외부인은 못 쓰는 최고급 헬스장, 수영장, 심지어 골프 연습장까지! 이 모든 것이 오직 입주민 전용이다. 아파트 단지 외곽에는 상가나 높은 벽이 배치되어, 외부 시선과 위험으로부터 내부를 철저히 보호한다.
그것뿐이랴. 맘 카페와 정보 모임. 이 요새의 핵심 기능은 교육이다. 특정 대단지에 산다는 것은 곧 학군 정보라는 황금줄을 잡았다는 뜻이다. 맘 카페를 중심으로 엄마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학원을 공동구매하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정보 모임을 만든다. 이 공동체는 아이들의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키트와 같았다. 이웃과의 관계가 불편하더라도, 이 정보의 울타리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완벽해 보이는 요새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고립시킨다. 높은 층수와 획일적인 배치, 폐쇄적인 디자인은 옆집과의 자발적인 교류를 차단한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수천 명이 모여 살지만, 오히려 주택가보다 더 외로운 섬이 된다.
이 고립된 공간에, 층간 소음 같은 사소한 문제가 터지면 이웃은 순식간에 적이 된다. 가장 가까이에 살면서, 서로를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적대감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발생하는 셈이다.
잃어버린 고향의 정서와 골목길의 추억
우리가 아파트에 갇히면서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장소성과 옛 기억이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우리는 논밭을 밀고, 오래된 골목과 한옥, 작인 주택들을 철거했다. 그 땅이 수백 년 동안 품고 있던 동네만의 색깔과 정서를 깨끗하게 지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전국 어디를 가도 똑같이 생긴 획일적인 콘크리트 덩어리를 꽂아 넣었다.
예를 들어, 부산 에코델타시티를 보라. 이름은 델타(삼각주)지만, 과거 습지와 갯벌, 농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깔끔하게 구획된 도로와 신축 아파트들만 가득하다. 효율적이지만, 그곳만의 스토리는 사라진 것이다.
옛날 골목길에서는 이웃집 문 앞에 앉아 파를 다듬는 아주머니, 공을 차는 아이들, 저녁 냄새를 맡으며 '오늘 반찬은 뭐예요?'라고 인사를 나누는 풍경이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이런 수평적인 관계를 파괴하고, 위아래로만 연결된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위층과 아래층은 소음의 발원지와 소음의 피해자로만 존재할 뿐, 따뜻한 인간관계는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가 꿈꾸는 다음 버전의 집
우리가 콘크리트 탑에 갇혀 사는 이유는, 결국 돈과 안전을 가장 높은 가치로 두었기 때문이다. "정신적 자유나 이웃과의 정보다는, 내 자산 가치가 오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외치며 스스로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게 우리가 원했던 삶인가?
대한민국의 아파트 쏠림 현상은 개인의 불안감을 먹고 자란 거대한 콘크리트 괴물이다. 우리는 이 괴물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어왔지만, 정작 이 괴물이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가 이 콘크리트 감옥의 문을 정말로 박차고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그동안 콘크리트가 안전을 준다고 믿었지만, 안전을 잃지 않기 위해 쌓아 올린 이 벽이 가장 먼저 우리의 마음을 가둬왔다는 사실이다. 이제 필요한 건 더 높은 층이 아니라, 더 넓게 숨 쉴 수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근린주구 이론 : 1920년대 페리가 제안한 초등학교 도보권 중심의 단위 주거구역으로, 생활의 안전·편리·쾌적성과 주민 간 사회적 교류를 도모하기 위한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