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이직을 한다는 것

서른의 끝, 마흔의 시작

by 기록습관쟁이

박 차장의 30대는 거대한 바위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직장은 옮길수록 손해다", "진득하게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다"라는 어른들의 말을 경전처럼 떠받들었다. 부당한 지시가 내려와도,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시스템이 목을 조여와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묵묵히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 믿었던 10년이었다.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나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을 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던졌다. 회사를 걸어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으나, 현실의 시계는 무거웠다. 어느새 그의 나이 앞자리는 3에서 4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박 차장은 이직에 대한 큰 두려움이 없었다. 10년의 경력, 성실함이라는 무기, 그리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 하나 오라는 곳 없겠어?"

그게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년의 외도, 그리고 5평의 고독

박 차장은 곧바로 동종 업계로 가지 않았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지겨워서였을까, 그는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2년의 시간. 결과부터 말하자면 처참한 실패였다.

세상을, 일을 너무 쉽게 봤다는 자책이 밤마다 그를 괴롭혔다.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가 머물던 곳은 타지의 5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창문을 열면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났고, 고개를 내밀어야 겨우 하늘 한 조각이 보였다. 밤이 되면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덩그러니 놓인 편의점 간판의 불빛뿐, 주위는 온통 허허벌판이었다. 그 좁은 방에서 박 차장은 실패의 쓴맛을 삼키며 가장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했다.

2년의 외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현관문을 열자 아내와 아들이 달려 나와 그를 안았다.

"고생했어, 아빠."

그 따뜻한 온기에 박 차장은 무너져 내릴 뻔했다. 남편이자 아버지의 부재.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내가 감당했을 시간들이 가슴을 찔렀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한 달 동안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그는 다시 박 차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하나였다.


죄인 아닌 죄인 : 구직의 시간

노트북을 켜고 사람인, 워크넷, 잡코리아를 순례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경제는 바닥을 친지 오래고, 지역 경제는 지하 암반수까지 뚫고 내려갔다는 뉴스가 연일 들려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가 가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제법 눈에 띄었다.

"오호라, 이래서 어른들이 기술 배워두면 굶어 죽진 않는다고 했구나."

희망이 보였다. 좁은 틈바구니지만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분명 있어 보였다. 하지만 클릭 버튼을 누르기 직전마다 망설임이 손끝을 잡았다. 41세. 마흔이 넘었다는 사실이 마치 주홍글씨처럼 느껴졌다. 자격 요건이 되는 기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구겨 넣었다. 자소서를 다듬을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일단 넣고 보자.

일주일이 지났다. 휴대폰은 고장 난 것처럼 잠잠했다. 스팸 문자 하나 오지 않는 고요함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뭐지? 내 경력이 부족한가? 연봉을 너무 높게 불렀나? 아니면... 나이 때문인가?'

자신만만했던 긍정 회로는 멈추고, 그 자리에 초조함이 똬리를 틀었다.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열흘이 지났다. 불안은 공포로 바뀌어갔다. 내가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2주가 다 되어갈 무렵,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박 서방, 이력서는 좀 넣고 있나? 연락 오는 데는 있고?" 처가와 본가의 어른들이 조심스럽게, 하지만 뼈 있는 걱정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분들 또한 격동의 시대를 살며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던 인생 선배들이기에, 40대 가장의 실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그 걱정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었지만, 박 차장에겐 피를 말리는 압박이었다.

"아유, 걱정 마세요. 연락 오는 곳 많아요. 제가 골라 가려고 재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짐짓 큰소리를 쳤다. 아무 문제없다고, 걱정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감을 바닥을 쳤고, 애가 탔다.


반전, 그리고 선택의 기로

보름이 지났다. 기적처럼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넣었던 기업들에서 연달아 면접 제의가 왔다. 꽉 막혀 있던 하수구가 뚫리듯, 한 번 터진 물꼬는 거침없었다. 면접을 본 곳 중 두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을의 입장에서 전전긍긍하던 박 차장은 순식간에 갑의 위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쥐게 되었다. 연봉, 워라벨, 출퇴근 거리... 조건을 따져 보며 행복한 고민을 했다. 출근 날짜가 정해지고 난 후에는 동종 업계 전국 탑 100 안에 드는 기업에서 헤드헌팅 연락이 오기도 했다.

"아, 조금만 더 기다려 볼걸 그랬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하지만 박 차장은 지금 선택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는 현재 그곳에서 2년째,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나이가 깡패다"라는 슬픈 진실

박 차장의 부서에는 지방 현장에 파견 나가 있는 팀원이 두 명 있다. 최근 인력이 부족해 직원을 새로 뽑았는데, 50대 초반의 베테랑 감리원 출신이 채용되었다. 스펙으로만 보면 과분할 정도의 고급 인력이다.

하지만 사무실의 공기는 미묘했다.

"아니, 나이가 너무 많으신 거 아니야? 부려먹기 부담스러운데."

"경력은 좋은데 우리 팀 막내보다 나이가 많으면 융화가 될까?"

이것이 핵심이었다. 중소기업, 아니 대한민국 기업 생태계의 서글픈 현실이다. 회사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스펙을 가진, 다루기 쉬운 인력을 선호한다. 너무 뛰어난 경력도, 너무 많은 나이도 부담이 된다. 특히 나이는 조직의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신입 사원도 아닌 경력직 채용에서조차 "나이 먹으면 오라는 데 없다"는 어른들의 잔소리는 팩트 폭력에 가까웠다. 20대, 30대 때는 피부로 와닿지 않던 그 말이 40대가 되어 이력서를 내미는 순간, 거대한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다. 박 차장 역시 구직 기간 동안 느꼈던 그 싸늘한 침묵이 바로 이 나이의 벽이었음을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할 때

하지만 박 차장은 단호하게 말한다.

"절대란 없다."

나이라는 강력한 페널티를 안고도, 2년의 공백기를 가지고도 박 차장은 보란 듯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40대,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나이는 사실 경험과 노련미가 가장 무르익은 전성기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길에 오른다. 상사와의 갈등, 비전 없는 회사, 쳇바퀴 같은 일상...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나가고 싶다.'

그런 당신에게 박 차장은 자신의 경험을 빌려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이직이나 퇴사를 마음먹었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결국엔 하게 됩니다. 고민하는 시간은 당신의 탈출을 늦출 뿐입니다. 충분히 고민했다면, 칼을 뽑으세요. 시간은 금이고, 당신의 인생은 회사의 부속품으로 썩히기에 너무나 아깝습니다."

돌이켜보면 박 차장에게 남은 유일한 아쉬움은 실패했던 2년이 아니라, 버티기만 했던 30대의 10년이다. 더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왔더라면, 더 일찍 내 가치를 시험해 봤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두렵다. 40대의 이직은 맨몸으로 절벽을 건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건너편에는 분명 당신을 필요로 하는 땅이 있다. 박 차장이 해냈다면, 여러분은 더 쉽고 빠르게 해낼 수 있다.

이 글은 당신의 등을 떠미는 응원이자,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의 생생한 기록이다. 지금 흔들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새로운 시작을 할 준비가 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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