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으로 빚어낸 중년의 자화상
퇴근 후 씻고 나와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낯설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말끔한 정장을 입었지만 어딘가 어깨가 굽은 중년의 남성, 서울 빽빽한 아파트 숲,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마치 텔레비전이 아닌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화면 속 김 부장은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짠하며, 가끔은 견딜 수 없이 밉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넘어서는 순간, 묘한 연민과 동질감이 밀려온다.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 드라마는 단순히 한 중년 남성의 몰락이나 성공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희로애락이라는 네 글자로 압축된, 우리네 인생의 적나라한 보고서다.
희(喜), 혹은 착각이라는 이름의 달콤함
드라마 초반, 김 부장이 느끼는 기쁨은 사실 우월감에 가깝다. 서울에 자가 아파트가 있다는 안도감, 대기업 부장이라는 명함이 주는 무게감. 그는 그 견고한 성 안에서 안전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지만, 솔직해져 보자. 우리 중 누가 그 달콤한 안정감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승진 통보를 기다리며 김칫국을 마시는 그의 표정에서, 아파트 값이 올랐다는 소식에 입꼬리를 씰룩이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속물적이면서도 솔직한 기쁨을 본다. 그것은 "나는 잘 살고 있다!"는, 어쩌면 필사적인 자기 최면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기쁨은 얄팍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노(怒), 타인의 속도에 대한 조바심
그러나 인생의 기쁨은 찰나이고, 곧이어 분노와 초조함이 닥쳐온다. 김 부장의 분노는 대개 비교에서 시작된다. 애송이라고 생각했던 송 과장이 재테크로 승승장구할 때, 고분고분하던 도 부장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때, 김 부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다. 이 장면들은 현실의 우리를 너무나 아프게 찌른다. 우리는 늘 화가 나 있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물가에 화가 나고, 나보다 덜 노력한 것 같은 누군가의 성공에 화가 난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이 꼰대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씩씩거릴 때, 그건 단순히 성격 나쁜 상사의 히스테리가 아니다. 자신이 지켜온 세상의 규칙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옛날 사람의 비명이다. "내가 틀린 건가?"라는 의심을 "네가 틀렸어!"라는 분노로 덮으려 하는 그 모습. 그 서툰 방어기제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옹졸함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애(哀), 껍데기를 벗은 자의 쓸쓸한 등
드라마가 원작과 달리 휴머니즘을 띠기 시작하는 지점은 바로 이 슬픔의 정서부터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 부품으로써 수명을 다하고, 명예퇴직이나 좌천의 기로에 섰을 때 김 부장의 눈빛은 흔들린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 서울 자가라는 간판을 떼고 났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늙어가는 한 인간,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가장의 쓸쓸한 등이 있을 뿐이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거나,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처연하다. 잘 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바닥을 칠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그가 실패해서 슬픈 것이 아니다.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실은 한순간에 사라질 신기루였음을 깨닫는 그 허무함에 공감하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지나가고, 누구에게나 내리막길은 온다. 필연적인 하강 곡선을 마주한 인간의 무력감은 시청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적신다.
락(樂),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드라마는 우리를 절망 속에 버려두지 않는다. 원작 웹툰이 날카로운 풍자로 현실의 폐부를 찔렀다면, 드라마는 그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다. 이게 바로 내가 느낀, 드라마가 원작과 다르게 흘러가면서 주는 묘미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순간에도 삶은 이어진다. 김 부장은 뻣뻣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더듬거리며 찾기 시작한다. 믹스커피 한 잔의 여유, 퇴근길에 마주치는 소소한 풍경,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거창한 성공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과정. 고난과 역경이라는 터널을 지나 비로소 맞이하는 소박한 즐거움. 이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의 맛이 아닐까. 맵고 짜기만 했던 인생에 비로소 담백한 숭늉 같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글로 옮겨 적는 인생의 질감
글로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드라마가 배우의 표정과 음악으로 감정을 증폭시킨다면, 글은 행간의 침묵으로 독자를 초대해야 한다. 김 부장이 상사에게 깨지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울 때의 그 매캐한 연기 냄새, 승진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확인했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그 진동, 그리고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느끼는 안도감의 온기. 이런 감각들을 활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아야 한다.
드라마 김 부장 이야기가 훌륭한 이유는, 주인공을 영웅으로도 악인으로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혹은 내 안에 있는 평범하고 모순적인 인간일 뿐이다. 잘 될 때 오만하고, 안 될 때 비굴하며,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존재. 작가는 이 모든 희로애락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인생도 지금 드라마처럼 흘러가고 있다"고. 지금 겪고 있는 고난도, 지금 누리는 행복도 모두 긴 인생 드라마의 한 챕터일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즐거워하지만, 결국 마주하는 건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김 부장의 이야기가 그토록 몰입감 있게 다가오는 건, 그 속에 땀 냄새나는 진짜 사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원작의 냉철함에 드라마적 허용인 따뜻한 휴머니즘이 더해지니, 어찌 즐겁고 재밌지 아니한가.
TV를 끄며 나는 생각한다. 내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칠 수많은 김 부장, 송 과장, 정 대리들의 표정을. 그리고 그들 각자의 가슴속에 품고 있을 대하드라마를. 비록 지금은 힘들다고 고단한 챕터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언젠가 찾아올 락(樂)의 순간을 기다리며 묵묵히 버티는 우리 모두의 삶에,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가 내게 가르쳐 준, 글로 다 담아내기 벅찬 인생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