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함의 저주, 그리고 승진이라는 이름의 비극

왜 전설의 오 부장은 결재판의 빌런이 되었나

by 기록습관쟁이

회사라는 거대한 정글에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신입사원 시절, 술자리 안주로 씹어대던 그 무능하고 꽉 막힌 오 부장도, 알고 보면 10년 전에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일 잘하던 '전설의 오 대리'였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 긴 세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뇌세포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라도 회사 환기구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승진 임명장에 지능 지수를 반납하라는 이면 계약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까? 우리는 이 기이한 현상을 매일 목격한다. 어제까지 내 옆자리에서 엑셀 단축키를 피아니스트처럼 두드리며 "역시 김 대리야!"라는 찬사를 받던 그가, 팀장이 되는 순간 엑셀은 켜지도 못한 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는 동네 바보가 되어가는 과정을 말이다.

이 슬픈 코미디의 각본가는 로런스 J. 피터라는 사람이다. 그는 이것을 <피터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내용은 잔인하리만큼 단순하다.

"조직 내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승진하다가, 결국 더 이상 일을 잘 해낼 수 없는 자리에 딱 멈춰 서서 평생 그 자리를 지키며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내 옆 부서 최 팀장을 보자. 그는 과거 영업팀의 신화였다. 거래처 사장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특유의 친화력과 끈기로 죽은 계약도 살려냈다. 회사는 그의 영업력을 높이 사서 그를 영업 기획 팀장으로 승진시켰다.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영업 현장에서 고객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형님, 동생 하던 능력은 기획서의 논리를 잡고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는 팀원들이 밤새워 만든 전략 기획서를 펴놓고 폰트 크기가 11포인트인지 12포인트인지, 줄 간격이 160% 인지 180%인지를 자로 재기 시작했다.

"김 대리, 여기 자간이 좀 답답해 보이지 않아? 그리고 이 파란색, 우리 로고 색이랑 미묘하게 다른데?"

전략의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는 "음, 일단 텍스트부터 고치고 다시 보지"라며 회피한다. 본질을 건드릴 능력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형식을 쪼아대며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려 드는 것이다. 이것이 피터의 법칙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무능력의 병리 현상이다. 그는 무능해진 것이 아니다. 유능할 수 없는 위치에 도달했을 뿐이다.

더 끔찍한 사례는 연구소의 이 수석이다. 그는 천재적인 개발자였다. 코딩하는 뒷모습에서 후광이 비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회사는 그에게 보상으로 관리자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이제 그는 코드를 짜는 대신 사람을 짜야했다.


하지만 기계와의 대화에 능통했던 그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오류를 뿜어냈다. 팀원들의 감정을 읽지 못했고, 업무 분장의 효율성을 계산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팀원들이 짠 코드를 뺏어다가 자신이 밤새 고치는 쪽을 택했다. "답답해서 내가 하고 말지." 그는 스스로를 희생하는 리더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팀원들의 성장을 막고 조직을 이 수석 없이는 아무것도 안 돌아가는 마비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유능한 개발자였지만, 무능한 리더가 되어 조직을 망쳤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상층부를 채우기 시작하면 회사는 거대한 정체의 늪에 빠진다. 임원 회의를 상상해 보라. 각자의 실무 분야에서는 날고 기었으나, 거시적인 경영 판단 앞에서는 무능력학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책임을 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회의를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만든다. TF(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옥상옥*의 결재 라인을 신설한다. 일이 진행되지 않으니 절차라도 복잡하게 만들어 우리가 무언가 치열하게 하고 있음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 안건은 리스크가 있으니, 다음 주에 다시 논의합시다."

"관련 부서 합의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

그렇게 서류는 결재판 속에서 썩어간다. 실무자들은 속이 터진다. "아니, 도대체 저 간단한 결정을 왜 못 내려주는 거야?"라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안 해주는 게 아니라 못 해주는 것이다. 그 자리가 요구하는 역량이 그들의 그릇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비효율의 유람선인 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침몰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일까? 피터 교수는 여기에 대해 아주 통찰력 있는 답을 내놓았다.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아직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하위 직급의 직원들에게서 나온다."


그렇다. 회사를 먹여 살리는 건, 아직 승진하지 못한 대리, 과장, 그리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패기 넘치는 신입들이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 있고, 그 에너지가 상층부의 무능력을 뚫고 성과를 만들어낸다. 소름 돋는 사실은, 이 유능한 직원들 역시 언젠가는 그 보상으로 승진을 거듭하다가 결국 자신만의 무능력의 벽에 부딪혀 그 자리에 박제될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가끔 사무실을 둘러보며 섬뜩함을 느낀다. 지금 내 눈앞에서 열정적으로 전화를 받고,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기획안을 통과시키는 저 유능한 후배가, 10년 뒤에는 무의미한 훈시를 늘어놓으며 법인카드 영수증이나 챙기는 부장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나 자신이다. 나 역시 언젠가 "자네, 이제 팀장 달 때 됐지?"라는 달콤한 유혹과 함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곳으로 보내질 것이다. 그때 나는 쿨하게 "아닙니다, 저는 실무가 좋습니다. 만년 과장으로 남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봉 인상과 직급 상승을 거부할 용기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우리는 모두 예비 피터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회사에서 느끼는 고통의 대부분은, 나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자리에 앉은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너무나 유능했기에, 지금 너무나 무능해져 버린 그들.

오늘도 부장님은 10년 전 대리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PPT의 표와 표 사이 간격이 너무 좁다는 지적을 하고 계신다. 속으로 '또 시작이네'라고 욕하려다가 멈칫한다. 저 모습이 나의 미래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저 기도할 뿐이다. 내가 무능해지는 속도보다, 회사가 망하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기를. 아니, 적어도 내가 무능력의 단계에 도달했을 때, 눈치 빠르게 은퇴할 수 있는 지혜가 내 통장 잔고만큼이나 쌓여 있기를 바랄 뿐이다.

관료제의 톱니바퀴 속에서, 오늘도 자신의 무능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전국의 수많은 승진자들에게, 연민과 공포가 뒤섞인 건배를 보낸다.



옥상옥* : 지붕 위에 또 지붕이 있다는 뜻으로, 사물이나 일 따위가 쓸데없이 거듭됨을 뜻함.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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