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의 현실을 탓하는 대신, 시스템을 이용해 미래를 설계하는 승부사들.
세상에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몇 가지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버뮤다 삼각지대, 그리고 대한민국 공무원의 주차장이다.
얼마 전, 업무차 한 관공서를 방문했다가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낡고 투박한 관공서 건물의 외관과는 달리, 그 앞마당인 주차장은 가히 모터쇼를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독일 3사의 엠블럼이 번쩍이는 세단부터, 캠핑 장비가 가득 실릴 듯한 육중한 SUV,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의 전기차까지. 그곳은 분명 박봉의 대명사로 불리는 공무원들의 일터였지만, 주차된 차들만 보면 여의도 증권가나 판교 IT 밸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가 아는 공무원의 월급 명세서는 꽤나 겸손하다. 9급 1호봉 실수령액이 최저시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뉴스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도 저들은 어떻게 저런 호사를 누리는 걸까?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찬다. "에이, 뻔하잖아. 집에 돈이 많겠지.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취미로 직장 다니는 거 아니겠어?"
틀린 말은 아니다. 개중에는 부모님의 든든한 경제력 덕분에 월급은 용돈으로 쓰며 품위 유지를 하는 금수저 공무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관공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관찰해 본 결과,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그들 여유로움 뒤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니 알면서도 외면했던 치밀한 생존 전략이 숨어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쫓으려 손에 커피를 들고 탕비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파티션 너머로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주무관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는 당연히 "오늘 점심 메뉴 별로지 않았냐?" 라거나 "김 팀장님 또 잔소리더라" 같은 시시콜콜한 직장인 토크를 예상했다. 하지만 내 귓속에 꽂힌 대화는 전혀 다른 장르였다.
"박 주임, 이번에 그쪽 신도시 지구단위계획 발표 난 거 봤어? 내가 지난번에 말한 그 구역, 용도변경 될 가능성 높아 보이던데."
"아, 거기요? 주말에 임장 한번 가보려고요. 안 그래도 대출 규제 좀 풀려서, 마이너스 통장 활용해서 급매 잡을까 고민 중입니다. 주식 쪽은 지금 변동성이 너무 커서 비중 좀 줄였거든요."
"그래, 잘 생각했어. 월급쟁이가 월급만 바라보면 답 안 나온다. 우리 같은 직업은 시간이 무기잖아. 퇴근하고 뭐 하게? 바짝 공부해서 깃발 꽂아야지."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공무원의 워라밸을 그저 칼퇴근 후 즐기는 여가 생활 정도로만 생각했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맛집을 다니거나, 동호회 활동을 하며 현재의 즐거움을 소비하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워라밸은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 시간이었다.
최근 뉴스를 보면 MZ세대의 공직 이탈률이 역대 최고라고 한다. 낮은 임금과 경직된 조직 문화해 실망해 사표를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 안정성을 누구보다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안다. 자신의 월급만으로는 서울에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들은 절망하는 대신 시스템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꽤 강력한 무기가 된다. 첫째, 잘릴 위험이 없다. 이는 투자 심리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게 해 준다. 주식 시장이 폭락하거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도, 다음 달 20일이면 어김없이 월급이 통장이 꽂힌다. 이 현금 흐름의 확신은 그들이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고, 하락장을 버텨내는 멘털의 원천이 된다. 일반 사기업 직장인이 구조조정 공포에 떨며 현금을 쥐고 있을 때, 그들은 대출을 일으켜 자산을 매입한다.
둘째, 시간의 확보다. 물론 격무에 시달리는 부서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퇴근 시간은 자기 게발을 위한 황금 같은 기회다. 실제로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재테크 서적의 주 독자층 중 상당수가 공무원이나 교사라는 통계도 있지 않은가. 그들은 퇴근 후 술자리 대신 스터디 모임에 나가고, 주말에는 캠핑을 가는 척하며 지방 곳곳의 땅을 보러 다닌다.
관공서 주차장의 그 빛나는 외제차들은, 어쩌면 그들이 퇴근 후 치열하게 공부하고 투자해서 얻어낸 전리품 일지도 모른다.
두 종류의 워라밸, 그리고 엇갈린 미소
관공서에 계약 업체로 일하며 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다.
첫 번째 부류는 워라밸을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칼퇴근은 하지만, 그 시간을 오로지 휴식과 유흥에 쓴다. "월급이 너무 적어"라고 불평하면서도, 그 적은 월급을 쪼개 최신 유행하는 옷을 사고 비싼 오마카세를 먹으러 다닌다. 그들의 얼굴에는 순간의 즐거움은 있지만,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서려 있다. 미래가 안갯속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는 워라밸을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앞서 말한 그들이다. 겉으로는 허허실실 웃으며 농담 따먹기나 하는 것 같지만, 머릿속에는 10년 뒤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엑셀 파일처럼 정리되어 있다. 그들 미소에는 여유가 묻어난다. 그것은 부모를 잘 만나서가 아니라, '내 인생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아우라다.
"집안이 잘 사는가 보군."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들은 지금 잘 사는 집안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까.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바쁘다는 핑계로 미래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나? 혹은 '나는 안정적인 직장이 없으니까'라며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았나?
공무원 사회의 이면을 보며 깨달은 건 하나다. 직업이 무엇이든, 연봉이 얼마든, 결국 인생의 승패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넷플릭스 시리즈의 다음 화를 누르고, 누군가는 다음 투자처를 검색한다. 이 작은 차이가 1년, 5년, 10년 쌓여 주차장의 풍경을 바꾸고, 노후의 풍경을 바꾼다.
그들의 얼굴에 밴 넉넉한 미소는 단순히 통장 잔고가 많아서가 아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전략을 짜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여유다.
나는 그들에게서 아주 중요한 인생의 전략을 훔쳤다. 월급이 적다고 투덜대기 전에,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자본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퇴근 후 나의 시간은 소비되고 있는가, 아니면 축적되고 있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차는 비록 낡았지만 마음만은 벤츠를 탄 것보다 더 든든해졌다. 나도 이제부터 내 인생의 주차장을 새롭게 리모델링할 계획이 섰으니까 말이다. 자, 일단 오늘 저녁부터 넷플릭스 대신 경제 뉴스라도 한 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비친 그들은 현명한 승부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