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붉은말'의 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대한민국 경제의 거목이었던 이건희 회장, 향년 78세. 전 세계인의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이라는 혁명을 집어넣은 스티브 잡스, 향년 56세. 밤하늘을 가장 찬란하게 밝히던 별들은 생각보다 일찍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남긴 자산의 가치는 천문학적이었고, 그들이 누릴 수 있었던 의료 서비스는 인류 최상위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명'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그 어떤 거물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도대체 인간에게 수명이란 무엇이며, 운명이란 또 무엇인가?"
2026년 병오년의 새 아침이 밝은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신발 끈을 묶어야 합니다. 어쩌면 수명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상수'일지 모르지만, 운명은 우리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라는 행성에는 저마다의 시계를 찬 생명체들이 가득합니다. 어떤 이는 하루살이를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고작 24시간을 살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날갯짓을 하느냐고요. 하지만 하루살이 입장에서 보면 100년을 사는 인간이 오히려 지루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매미는 수년의 세월을 땅속에서 인내하다 지상으로 나와 단 며칠 동안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포효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사자, 코끼리, 들소 같은 육지 동물부터 고래와 거북이 같은 해양 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에 각인된 수명의 지도를 들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 중 누구도 '수명대로 살다 가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운명'을 삽니다. 오늘 사자에게 쫓기다 살아남은 가젤에게 수명이란 사치스러운 단어입니다. 당장 눈앞의 풀을 뜯고, 새끼를 돌보고, 뜨거운 태양을 피하는 그 모든 행위가 곧 그들의 운명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에 충실하며 매일 생존을 건 도박을 벌입니다. 그들에게 운명은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 그 자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최상위 포식자'라 부릅니다. 지혜와 감성을 지녔고, 도구를 사용하며, 이제는 인공지능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존재니까요. 앞서 언급한 이건희 회장이나 스티브 잡스 역시 자본주의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만큼 먹고, 가장 안전한 곳에서 잠들며, 풍요로운 여생을 보낼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편안한 안식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스트레스와 고통의 런웨이 위로 밀어 넣었을까요?
최상위 포식자에게는 천적이 없지만, 대신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천적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오래 사는 수명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비전이 세상에 구현되는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불태웠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일찍 운명한 이유는, 남들이 100년 동안 쓸 에너지를 50~60년 안에 밀도 있게 쏟아부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과거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고작 60세였습니다. 환갑잔치가 동네의 큰 경사였던 시절이 불과 수십 년 전입니다. 역병과 기아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것이 기적이었던 시대죠. 하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은 고무줄처럼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운명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습니다.
수명은 길이이고, 운명은 깊이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수많은 운명의 엇갈림을 봅니다. 꽃을 피우기도 전에 떠난 어린 생명, 과로로 쓰러진 가장, 예기치 못한 사고로 멈춰버린 꿈들. 100세 시대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운명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 삶의 마침표를 찍곤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내일의 운명을 100%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허무함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까요?
결코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운명(運命)이라는 단어의 한자 의미를 다시 새겨봅니다. 옮길 운(運)에 목숨 명(命). 즉, 운명이란 하늘이 정해준 목숨을 내가 스스로 굴리고 움직여 나가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단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수명이라는 캔버스 위에 어떤 색깔의 그림을 그려나갈지 결정하는 운전대가 바로 운명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판정을 받고도 아이폰의 세세한 디자인을 고민했던 것,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미래 먹거리를 걱정했던 것. 그것은 그들이 수명의 한계를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수명의 끝을 알기에 오늘이라는 운명에 더 충실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내 수명이 내일 끝날지라도, 혹은 세상의 수명이 다할지라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겠다는 지독한 성실함이며, 운명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내가 심은 사과나무의 열매를 내가 따 먹지 못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그 행위 자체가 나의 존재 이유이자 운명이 된다는 뜻입니다.
2026년 병오년은 붉은말의 해입니다. 말은 지치지 않고 달리는 열정의 상징이며, 붉은색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태양의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바로 이 '질주하는 말'의 에너지입니다. 내 수명이 얼마나 남았을지 계산하며 불안해하기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운명을 어떻게 멋지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유쾌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운명이라는 말은 때로 누군가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운명을 달리하셨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이 단어가 살아있는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인간의 수명을 타고났지만, 각자가 만들어가는 운명의 무늬는 단 하나도 같지 않습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이 마주할 운명은 어떤 모습인가요?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행운에 덩실덩실 춤을 출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순간이 여러분이 직접 굴리고 있는 목숨의 흔적이라는 점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거인들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사과나무를 심어봅시다. 그 나무가 자라 기적 같은 행운의 열매를 맺을지, 아니면 그저 든든한 그늘이 되어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운명의 주인은 나였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한 해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병오년의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랐습니다. 여러분의 수명은 건강으로 가득 차고, 여러분의 운명은 환희로 가득 차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자, 이제 기운차게 달려볼까요? 당신의 앞날에 붉은말의 기운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