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과 글로 먹고사는

글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by 기록습관쟁이

새벽 4시, 부산의 공기는 차갑고도 정직하다. 20년 차 ICT 엔지니어인 나, 오늘도 거실 한구석에서 노트북의 푸르스름한 빛을 마주하고 앉았다. 화면 속 커서는 깜빡거리며 나를 조롱한다. "야, 어제 쓴 글도 유유자적하더라. 그냥 잠이나 자지?"


나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내 삶의 모토는 이제 유유자적이다. 20년간 전국 팔도 CCTV를 달며 남의 시선을 고정해 오던 내가, 이제 내 시선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유유자적이라는 놈이, 통장 잔고 앞에서는 자꾸만 유구무언이 된다는 사실이다.


책상 옆에 붙여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진을 슬쩍 보았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10쪽의 원고를 쓴단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런닝구 차림으로 뱃살을 긁으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하긴, 히가시노 게이고나 하루키 같은 스타 작가들은 안드로메다에서 온 생명체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들이 내놓는 책들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가판대의 로열석을 차지한다. 반면, 내 글들은 광활한 인터넷 바다에서 조용히 침몰 중이다. 가끔 달리는 댓글이라곤 "형님, 오늘도 힘내세요!"라는 왕년의 현장 동료들뿐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세상에 책 읽는 사람은 몇 명이며, 그중에서 글로 돈을 버는 인간은 또 몇 명일까? 엔지니어 특유의 분석 기질이 발동해 통계청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결과는 가관이었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다고?"


세상에나. 60%의 인류가 활자 문명과 작별을 고했다니. 그런데 매년 쏟아지는 신간은 수만 종이다. 이건 마치 한화 이글스 경기장에 관중은 없는데 선수들만 3교대로 출전해서 경기를 뛰는 꼴 아닌가? (참고로 나는 한화 이글스의 팬이다. 인내심 하나는 전교 1등이라는 뜻이다.)


그중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 상위 0.1%도 아니고 0.001%의 영역이었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내가 내일 아침 출근길에 벼락을 맞으며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조금 낮은 정도일지도 모른다.


"오빠, 또 그놈의 통계 타령이야?"


부스스한 머리로 거실에 나온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브라우저 창을 닫았다. 임신 38주, 이제 곧 세상에 나올 딸아이를 품은 그녀의 배는 남산만큼 부풀어 있다.


"아니, 그냥... 내가 왜 이 어려운 길을 가려나 싶어서. 돈 벌 방법은 세상에 널렸는데, 굳이 왜 이 '글'이라는 가시밭길을 걷느냐는 성찰 중이었지."


아내는 식탁에 놓인 내 노트북을 툭 치며 말했다.


"글 쓰는 게 좋아서 시작한 거 아니었어? 오빠, 볼링 칠 때 핀 하나 안 넘어간다고 볼링장 때려치워? 아니잖아. 그냥 그 쾌감이 좋아서 하는 거지."


머릿속에 스트라이크 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볼링! 나는 3년 넘게 볼링을 쳤다. 투핸드에서 원핸드 덤리스로 폼을 바꿀 때의 그 지독한 적응기, 손가락이 붓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다시 레인 위에 서던 그 마음.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글은 처음엔 목적이었다. 내 안의 응어리를 뱉어내고, 20년 현장의 고단함을 위로받기 위한 순수한 행위. 하지만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내게 글은 이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 두 마음이 충돌하니 글이 써질 리가 있나.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전략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래, 내가 하루키가 될 확률은 0.001%지만, CCTV를 기가 막히게 잘 달면서 글도 좀 쓸 줄 아는 44세 부산 아저씨가 될 확률은 100%다. 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거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인세로 빌딩을 올리겠다는 야무진 꿈은 잠시 접어두자. 대신, 내가 가진 20년의 기술과 글을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장 엔지니어들이 겪는 실무 고민을 아주 유쾌하고 쉽게 풀어낸 전자책을 써보는 거야! 제목은 <어이, 박 씨! CCTV 선은 그렇게 따는 게 아니야> 정도로 하면 어떨까? 크몽이나 숨고에서 현장 기술자들에게는 성경과도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차별적인 대중이 아니라, 내 투박한 문체와 진심을 알아주는 진짜 팬 100명을 모으는 거다! 부산 사투리가 섞인 진한 현장 에세이로 유료 뉴스레터를 발행한다면? 100명이면 내 취미인 볼링비와 야구장 관람료 정도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글쓰기는 나를 성장시켜. 아들에게 훗날 들려줄 아빠의 치열한 40대 기록이자, 곧 태어날 딸에게 줄 첫 번째 선물이지.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자기 계발이 어디 있겠냐는 거지!'


어느덧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한다. 멀리 부산항의 불빛이 희미해진다. 나는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통계는 여전히 차갑다. 독서 인구는 줄어들고, 출판 시장은 얼어붙었으며, 나는 여전히 하루키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엔지니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오늘 나만의 수단을 찾았고, 여전히 글쓰기라는 목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확률이 낮다고 해서 그 길이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가지 않는 좁은 길일수록, 나만의 속도로 걷기에 가장 최적화된 유유자적한 길이 아닐까.


나는 오늘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적어 넣었다.


"성공한 작가가 되려 하지 말고, 글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 되자. 그러다 보면 돈은... 음, 한화가 우승할 확률 정도로 따라오지 않을까?"


글을 마치고 노트북을 덮자, 안방에서 아들이 잠결에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자, 이제 글은 다 썼으니, 진짜 수단을 위해 현장으로 출근할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발걸음은 어제보다 훨씬 가벼울 것 같다. 나는 이제 글로 먹고사는 법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이 이야기 속의 '나'는 바로 당신의 모습이자,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통계적 사실을 인지하되 그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과 글을 결합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작가로 살아남는 가장 유쾌한 생존법이 아닐까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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