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가득한 일상을 로그아웃하고, 동해의 정적 속으로 접속하다
내가 사는 부산은 언제나 축제 같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밤바다를 수놓고,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앞지르는 곳. 20년 넘게 기계와 시스템을 다루며 살아온 내게 부산의 역동성은 삶의 연료였다. 하지만 가끔 그 연료가 너무 뜨거워 마음이 과열되곤 했다.
출장 업무를 위해 동해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부산의 풍경이 멀어질수록,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동해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한 건 믿기 힘들 정도의 한적함이었다. 번화가의 소음도, 빽빽한 차들의 경적도 없었다. 마치 세상의 볼륨을 누군가 조심스럽게 줄여놓은 것 같았다. 그 낯선 고요함이 내 마음속 소란을 먼저 잠재워주었다.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달린다. 이곳 도로는 참 묘하다. 왼쪽을 보면 태백산맥의 웅장한 능선이 나를 따라오고, 오른쪽을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산맥은 거대한 초록색 벽처럼 든든하게 서 있다. "괜찮아, 내가 뒤를 받쳐줄게"라고 말하는 듬직한 형님 같다. 반면 바다는 가슴이 뻥 뚫릴 만큼 광활하다. 부산 바다가 다정한 이웃 같다면, 동해 바다는 깊은 속을 알 수 없는 철학자 같다.
산이 보여주는 아늑함과 바다가 선사하는 해방감. 나는 그 두 거대한 품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서 매료되고 말았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진 고민들이 참 작게 느껴진다. 억지로 무언가를 해결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 풍경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이다. 흐릿한 화면 초점을 맞추고, 고장 난 부분을 찾아내 다시 잘 돌아가게 만든다. 20년 동안 남의 시선을 대신해 세상을 맑게 닦아주면서 정작 내 마음의 렌즈는 돌보지 못했다. 일상의 먼지가 쌓여 내 마음은 어느덧 뿌연 안개가 낀 상태였다.
동해의 청정한 공기는 내 마음의 렌즈를 닦아주는 부드러운 천 같았다. 인공적인 조명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 산맥의 거친 바위틈, 파도가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의 디테일.
유지보수라는 건 기계에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 마음도 정기적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초점을 다시 맞춰야 한다. 동해의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닷가에 섰다. 이곳 파도는 소리부터 남다르다. 찰랑이는 가벼운 소리가 아니라, 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웅-웅-, 웅장하고 낮은 고동 소리다. 마치 대지가 내뱉는 깊은 한숨 같기도 하고, 지구가 들려주는 나직한 자장가 같기도 하다.
파도가 밀려왔다 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바다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제 속도대로 밀려오고, 제 때에 맞춰 돌아간다. 단순하고 정직한 반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조급함이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파도처럼 네 박자대로 살면 돼." 바다가 내게 건네는 위로였다.
이제 며칠간의 출장을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돌아가면 여전히 복잡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곧 태어날 예쁜 딸아이를 맞이할 준비도 해야 하고, 씩씩한 아들과 아내 곁을 지켜야 한다. 20년 차 기술자로서의 치열한 하루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내 마음엔 동해 조각들이 깊이 박혀 있다. 태백산맥의 든든한 초록과 동해바다의 깊은 푸름, 그리고 그 사이를 달릴 때 느꼈던 평온한 자유.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는 이 기억을 꺼내 볼 것이다. 내 마음 저장소에 동해라는 이름의 가장 깨끗한 폴더를 하나 만들어둔 기분이다.
동해는 참 좋은 곳이다. 나를 비워내고, 다시 채워준 곳.
산이 바다를 품고, 바다가 산을 닮아가는 그 경계에서 나는 오늘도 배운다. 산처럼 든든하게, 바다처럼 넓게, 그렇게 내 삶을 소중히 가꿔가야겠다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나는 다시 내 소중한 일상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