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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일까?

독창성을 더하는 작은 차이가 큰 혁신을 만든다

by 기록습관쟁이

바다에는 항로를 통해 배가 다닌다. 작은 어선부터 대형 컨테이너 선박까지 다양한 배들은 해상에서 정해진 규칙에 의해 이동한다. 이 중 300톤 이상의 선박은 선박교통관제에 관한 법률에 의해 관제 대상에 포함된다. 이를 관제하는 시스템을 VTS(해상교통관제시스템)라고 한다.


관제 구역의 중심엔 철탑이나 높이 솟아 있는 구조물이 있다. 거기에 레이더를 설치하여 배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추적한다. 이러한 기술은 1993년 포항항을 시작으로 도입되었다. 이후 2002년, VTS 전량 국산화에 성공했다. 기술을 그대로 가져와 국산화에 성공하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외산 장비를 국산화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 복제가 아니다. 처음에는 OEM 방식으로 거의 모든 기술을 그대로 들여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 연구진과 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며 발전을 거듭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100% 국산화에 성공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KTX-이음과 전동열차의 핵심 부품을 국산화하며 수입 의존도를 낮추었고, 한국수자원공사는 50 메가와트급 수력발전 설비의 핵심 부품인 러너를 100% 국산 기술로 개발했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단순히 외산 제품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술 자립과 산업 발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벤치마킹'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따라서 기존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차별화를 이루어 더 나은 기술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적인 혁신의 방법이다. 혁신이라는 단어는 왠지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기존 기술을 살짝 비틀어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벤치마킹은 단순한 모방과는 다르다.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기존의 우수한 기술이나 시스템을 분석하고, 그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요소를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도요타 생산방식(TPS)은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벤치마킹한 대표적인 사례다. 포드는 대량 생산 시스템을 통해 자동차를 대중화했지만, 도요타는 생산 속도뿐만 아니라 품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으로 차별화했다. 이를 벤치마킹한 여러 자동차 회사들은 자신들의 생산 공정에 맞게 변형하고 최적화하며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모방'은 어떨까? 모방이라는 단어는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히 따라 하기만 한다면 발전이 없겠지만, 모방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입히고 개선해 나간다면 그것은 창조로 이어진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모방하며 글쓰기를 연습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결국 독창적인 글을 탄생시켰다.


우리 주변에서도 모방과 창조의 관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 후, 다양한 제조사들이 이를 참고하여 스마트폰을 개발했다. 하지만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각자의 차별점을 더하면서 지금의 삼성 갤럭시나 구글 픽셀 같은 브랜드들이 탄생했다. 초기에는 아이폰의 디자인과 기능을 모방하는 듯 보였지만, 점차 각자의 기술과 철학을 반영하며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지구에 사는 인간 모두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거나 독창적일 필요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10%, 5%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은 차별점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고, 한 기업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모방을 두려워하지 말고, 벤치마킹을 적극 활용하며, 그 속에서 나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산화의 과정이자, 더 나아가 창조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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