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설마가 낳은 77만 원짜리 교훈

알다가도 모를 인생의 변수

by 기록습관쟁이

새로운 휴대폰을 살 때, 나는 자신만만했다. 이전 모델을 몇 년간 별 탈 없이 잘 사용했기에, 이번에도 문제없이 쓸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분실, 파손보험 가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느 날, 무심코 손에서 미끄러진 폰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폴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당황한 마음에 AS 센터를 찾았지만, 개인 실수로 인한 파손은 무상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차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것은 77만 원이라는 수리비 청구서였다.


순간, 머릿속에 번쩍 스치는 게 있었다. “아… 보험.”


한 달, 단돈 몇천 원이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설마 고장 나겠어?’라는 방심이 결국 77만 원짜리 인생 수업료로 돌아왔다. 한순간의 안일함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지,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이런 방심의 대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912년, 타이타닉호는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라는 찬사를 받으며 항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방심은 언제나 허점을 만든다. 선장과 선원들은 빙산을 미리 감지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구명보트는 전체 승객을 태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타이타닉은 역사에 남을 대참사로 기록되었고,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라는 방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좀 더 가벼운 예를 들어볼까? 올림픽에서 ‘황당 실수’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벌어졌다.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에서 린제이 제이콥엘리스는 거의 다 이긴 상황에서 방심한 나머지 묘기를 부리다 착지에 실패해 넘어졌다. 결국, 그녀는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쳤다. ‘이제 끝났다’ 싶은 순간, 방심이 기회를 가로채 간 것이다.

002.png

나는 고민 끝에 수리를 포기했다. 폰이 덜 접히든 말든 그냥 쓰기로 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쩐지 익숙해졌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기능만 한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이제 나는 보험을 들지 않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대신, 방심의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혹시 모르니까 대비해 두자.” 단돈 몇천 원이 77만 원을 막아줄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 아닌가?


어쩌면 인생도 마찬가지다.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는 찾아오고 만다. 그리고 그 순간, 대비가 되어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가른다. 타이타닉의 선장처럼, 린제이 제이콥엘리스처럼, 그리고 나처럼 방심하지 말자. 때때로, ‘설마’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함정이 될 수도 있으니까.


003.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진엔 관심 없던 내가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