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하나 맞고 정신 차렸습니다. 인생 뭐 그렇죠.
오늘도 어김없이 매뉴얼과 씨름했다. 일하다 죽을 뻔했다. 매뉴얼에 사람 잡힌다.
아무튼 그렇게 일 끝나고, 딱딱하게 굳은 몸을 질질 끌고 볼링장으로 갔다.
요즘은 점수에 대한 미련을 내려놨다. 인간관계도, 성적도, 볼링도… 내려놓으면 편하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몸이 가볍더라. 진짜로. 마음이 아니라 무릎이.
근데 역시 연습을 안 했더니 일관성이 어디로 도망간 건지. 공이 굴러가다 말고 생각에 잠기고.
“될 대로 되라지” 모드 돌입.
포기라고 하긴 애매하고, 그냥 체념….
첫 게임 183점. 이쯤이면 뭐, 살아는 있네 싶은 점수. 몸이 좀 풀리는 듯도 했고.
그러나…
2게임째.
내가 스윙을 했는지 스윙이 나를 했는지 모를 찰나, 왼발 복숭아뼈에 공이 쾅.
그 비싼 볼링공으로. 정통으로.
‘쿵’ 소리는 안 났는데 마음속에서 ‘이 자식이!’ 하고 외침이 터졌다.
진짜 너무 아파서 욕도 못 하고, 너무 쪽팔려서 소리도 못 질렀다.
그냥 시뻘건 얼굴로 다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나란 놈…’
“괜찮나?”
주변에서 하나둘 다가와 걱정해 주는데… 내가 아픈 게 아니라 자존심이다.
“괘, 괜찮습니다…” 하고 고개 푹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뼈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로.
그리고 세 번째 게임. 228점.
무려 +28점.
(볼링은 200점 기준으로 점수 따지는데,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다들 그러더라)
그뿐인가. 올커버!
미스 없이 스트라이크와 스페어 다 처리함.
내가 했지만 내가 안 믿겼다.
그리고 마지막 게임. 258점.
어우, 나 이러다 국가대표 되는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일단 기분은 그랬다)
오늘은 유난히 기분 좋은 날이었다.
중철 형님이 준 볼 2개 재지공 맡겼고, 우리 영태 동생이 중고볼 하나 줬다.
사실 중고든 뭐든, 공이 많으면 그만큼 옵션이 생긴다.
레인 상태 따라, 기분 따라, 허세 따라 고를 수 있으니까.
볼링은 다다익선이다. 장비가 많을수록 사람 체면이 선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일 듯)
집에 가는 길. 받은 공 어떻게 재지공할까 고민하면서 또 웃고,
가방 속 늘어나는 장비 보면서 혼자 흐뭇해졌다.
진짜 오늘은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왼쪽 복숭아뼈는 좀 삐뚤게 뻗어야겠지만.
요즘 배우 박정민이 쓴 책 '쓸만한 인간'을 읽고 있습니다.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재밌는 그의 문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산문집이 이런 느낌인걸까요? 그 영향이 다분히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글은 좀 색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 제 글과는 좀 많이 다를 겁니다. 하하..)
글이라는게 참 재밌습니다. 정답이 없습니다. 쓰면 족족 문장이 됩니다. 재밌는 하루였지만 그의 문장들로 하루를 마무리 하니 더욱 즐겁습니다.
황금연휴가 시작되었네요. 아무쪼록 즐거운 일만 가득한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