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없는 글

중디 월드뮤직 라디오 #209

by 이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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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글


그녀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목소리가 거칠고 말을 더듬는 그는

말을 포기하고 문자로 그것을 전하고 싶었다.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긴 문장을 몇 장을 써봤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구겨서 아무 데나 내던졌다.

차츰 글씨는 문자가 아니라

추상화처럼 난폭한 몸짓으로 변해갔다

그는 그것에 더 화가 치밀었다.

자신의 표현력을 의심하였고

그런 자신을 경멸하기까지 했다

그녀와 좋아질 수 없는 것은 모두

미숙한 문장력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 넘기며

몹시 흥분하여 손이 떨리고 있었다.


며칠 후 여느 때처럼 그녀에게서

밝은 문자가 왔다. 단 한 줄

'날씨가 좋아요. 만날까요?'

그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에게는 문장 표현력이 문제가 아니라

전하려는 주제가 애초부터 불확실하거나 없었던 것이다.

마음은 없었고 단지 글로 멋을 내고 싶었던 것뿐.


표현이 유창한 작가들은 대개 연인이 없다

연인이 있었다면 글은 뭐하러 쓰겠는가.




The Idan Raichel Project - Mai Nahar (River Waters)

https://youtu.be/Vf4ozDRY0Sw?list=PLal9sIB3XTQw8BLE4-YDhTJLBMOaBpZ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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