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아버지의 노래
아버지는 젊었던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청춘이란 낯설다. 아버지는 태생부터 아버지이며 아저씨다. 그는 그냥 아버지 일 뿐이다. 어머니가 그러하듯...
아버지는 언제나 무뚝뚝하고, 말과 표정을 아끼며 늦은 저녁 잠들 만할 때 대문을 열고 들어오며 아침 일찍 식사 냄새가 가시기 전에 나가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외투에서는 언제나 술과 담배냄새, 그리고 겨울밤의 차가운 밤공기가 묻어있다.
늦은 밤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채 보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나는 잠 속에서 웅얼거리는 아버지의 소리가 들렸지만 건강하게 피곤했던 나는 눈을 채 뜨지 못하고 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부신 아침햇살에 눈을 뜬 나의 베개 위에서는 아버지가 사 온 장난감이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일요일 아침에는 아버지는 자는 모습으로 누워있는데 이마 끝에 무수한 흰머리가 잘 보이는 그 죽은 듯한 얼굴에는 세상의 먼지가 더 이상 씻을 수 없도록 깊게 짓누르는 것이 보이며 그 무게로 인하여 주름은 아래로 굳게 쳐 저 있다.
이불 사이로 보이는 불룩한 배를 가린 흰 내복을 보면 그가 죽은 것인지 자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하지만 반복적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뱃살과 가끔 들리는 거친 숨소리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유난히 가로등이 영롱했던 그날 밤. 모처럼 친구 집에서 놀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발걸음의 속도와 리듬은 어떤 어려운 일을 마무리하고 난 뒤에 오는 해방감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결코 서두름이 없고 살짝 비틀거렸지만 마치 이 시간을 즐기는 듯한 다소 낭만적인 리듬의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굵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노래라기보다는 흥얼거림에 가까웠지만 그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나오는 안도가 섞인 스스로의 위안과 같았으며 내면에서 솟아나는 진실한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 낯선 노래는 내 어린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울림으로 남았다.
다음날 아침은 일요일이었다. 아버지의 휴일 아침은 늘 자는 모습이지만 그날은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 성당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외출을 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넓은 아버지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떤 무거운 것을 받치기라도 한 것처럼 근육이 돌출돼있었다.
나는 성당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자리를 잡았고 아버지는 내 뒷 좌석에 앉아서 다른 아저씨들과 눈인사를 하고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고 모두들 일어나 입당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뒤에서 아저씨들의 노랫소리도 들렸는데 그때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맞다. 그것은 어젯밤 가로등 골목에서 내 마음으로 기억한 굵고 낮은 생소한 남자의 목소리 었다. 그것은 무디지만 과묵하고 책임감이 몸에 밴 믿음직한 사나이의 진실한 울림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낯선 노랫소리 었다.
한 때 핀란드의 국민가수였던 'Tapio Rautavaara(타피오 라우타바라 / 핀란드 / 1915~1979 )'의 노래와 목소리는 바로 그런 느낌이다. 북쪽의 추운 지방이 아니면 나오지 않을 음악이다.
그는 한 때 런던 올림픽 창던지기 금메달리스트였고 양궁으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였으며, 수려한 외모로 영화에도 출연한 유명인이었지만 사람들이 그에게 끌렸던 것은 그 화려함 보다 더 강한 단순하지만 믿음이 변치 않을 듯한 아버지 같은 목소리였으리라.
그의 노래는 음악적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많은 노래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움과 변화란 없는 고지식한 단순함으로 일관한 찬송가 같았으나 거기에는 늘 변치 않을 것 같은 묵직한 믿음이 충만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멀리 나갔다가도 결국 그의 넓은 어깨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드 넓은 바다로 떠났지만 결국 고향의 산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그리고 다채로운 인생의 오만함 끝에 다시 움츠러들고 작아지는 하얀 노인의 순진함처럼 최초의 안정으로 회귀하고 싶은 것이다.
https://youtu.be/BvpEOOVSwxA?list=PL43T1ehjnKSVKsNhAmAG072sDhytPBY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