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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Jan 03. 2021

과묵한 약자들의 무표정한 유머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세계

과묵한 약자들의 무표정한 유머     



Aki Kaurismäki(아키 카우리스마키/1957~/핀란드)     


어차피 더 낮아질 수도 없고, 어느 날 신분이 상승하는 환상을 믿지 않는 그는 떠들어 댈 필요 없이 묵묵히 일을 할 뿐이다. 침묵과 무표정은 헛된 꿈으로부터 현실의 자신을 지켜 나가는 어쩔 수 없는 방어기제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마저도 일방적인 해직으로 한 층 아래로 떨어지지만 그에게 몇 층 정도는 큰 사건도 아니다. 학교의 성적 순위가 상위로 갈수록 상처 받을 만큼 치열하지만 하위의 순위는 오히려 어떤 순위의 변화에도 평온을 유지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공장의 단순 근로자, 유흥업소 근로자, 단순 판매 서비스직, 무명 아티스트 같은 프리 캐리어(Free Career)들에게는 이미 상승이 목적이 아닌 평온한 유지가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표정을 변화할 수 있는 사건이 없기 때문에 표정을 연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콘크리트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동력의 하나는 무표정 뒤에 있는 윤활유로서의 유머이다. 그것으로서 그들은 쉽게 포기하거나 절망하거나 자살하지 않는 최소한의 혈당인 것이다. 자살은 상류의 과혈당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모두 이런 약자들에 초점을 맞춘 평범하고 사실적인 드라마이다. 그들에게는 화려한 외모나 화려한 언변, 단정한 옷차림, 표정 관리술, 짓궂은 농담, 뜨거운 정열, 실없는 웃음... 이런 것들이 불필요하다. 또한 그들에게서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를 처음 볼 때 대개 주인공들의 무표정과 장식되지 않은 날 풍경에 당혹하기도 하지만 몇 편을 본 후에는 그것들을 이해되어 가면서 동시에 사회가 헛웃음과 헛 표정, 과장하고 장식된 풍경, 그리고 과격한 증오와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차츰 알게 된다.  반면 그곳에 따뜻한 정이 실종되어 있거나 애초부터 없었다는 차가움에 섬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꽉 막힌 회색의 무뚝뚝한 비현실적인 영화가 아닌, 그동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과장되어 포장된 비현실이었는가를 반대로 자각하게 해 주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영화이며 현실로의 열린 창이고 통로인 것이다.      

그의 영화는 크게 프롤레타리아 3부작 같은 노동자의 이야기와 최근의 국제 난민 등의 글로벌 인권과 같은 휴머니즘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중간에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류나 록키6과 같은 통쾌한 단편이 끼어있다. 그것들은 그가 미국과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극렬한 펀치 같은 영화들이다. ‘록키6’ 같은 영화는 단편이라기보다는 뮤직비디오에 가까운데 록키 시리즈에 나타난 미국식 애국주의를 직접적으로 경멸하고 조롱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그는 감독으로서 유명해진 후에도 단 한 번도 미국 시장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다만 그 단편들은 너무 가벼운 희극들이어서 그다지 힘이 들어있지 않다. 마치 장편소설을 쓰는 중 휴식시간의 그리는 만화 같다고나 할까?

그의 초기 작품인 ‘죄와 벌’과‘햄릿, 장사를 떠나다’를 보면 그가 어릴 때부터 관습과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기질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가 어린 시절 실험영화의 거장인 ‘장 꼭도’는 이런 말을 했었다. 

“톨스토이의 좌와 벌을 영화로 만들기에 자신의 능력뿐 아니라 명작을 넘어설 수 없다는 영화의 한계가 있다” 

라고 포기한 작품이었는데 카우리스마키는  곧 반항심에 그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물론 그것은 원작을 넘지 못하는 개인 작품이 되어버렸다. ‘보헤미안의 삶’도 그런 바탕으로 오페라 ‘라보엠’을 각색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보헤미안의 삶’은 원작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을 입힌 영화로 ‘죄와 벌’에서 한 계단 더 올라가 있었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과묵한 무표정과 함께 몇 가지 특징이 더 있는데, 그것은 흡연과, 음악, 그리고 배우들이다. 그의 모든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씬이 없을 정도로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담배연기와 함께한다. 남자들에게 담배는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제스처이고 상대와 동질감의 표현이기도 한데 그의 영화에서 흡연은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내성적인 남자들의 심정을 대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불쾌할 수도 있다.     

그의 영화에는 모두 음악이 중요한 독립적 요소로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3곡 이상은 전곡이 끊김 없이 나온다 주로 반항적이면서 허탈한 록앤롤, 센티멘탈하면서도 처량한 핀란드식 탱고와 폴카가 매우 강하고 적당한 시점에서 연주된다. 그리고 엔딩에 나오는 전곡 음악은 단지 배경음악이 아닌 스토리와 작가의 후기처럼 중요한 독립적 요서로서 존재한다. 그는 초기에는 쇼스타코비치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자주 사용했으나 중반 이후에는 일본 음악도 자주 등장한다. ‘보헤미안의 삶’의 엔딩에서는 느닷없이 일본 쇼와 음악 ‘눈이 내리는 거리에(雪の降る街を)“가 나오는데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일본의 음악 외에도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하는 씬도 많다. 그것은 그가 근대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해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남자‘에서 열차 안 씬과 ‘희망의 건너편’에서 갑자기 일본 식당으로 업종을 바꾸는 코믹한 씬을 볼 때 일본에 대한 이해는 매우 가벼운 수준이다. 

그의 영화가 핀란드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등 다양한 배경과 여러 언어를 사용해 만들 듯이 그의 영화음악 자체가 월드뮤직이다.     


Matti Pellonpaa(마티 펠논파) / Kati Outinen(카티 오우티넨)


모든 영화감독들이 자신과 손발이 잘 맞는 배우들과 연속으로 작업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특히 더 그렇다.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으며 마치 그의 분신과 같은 배우 ‘Matti Pellonpaa(마티 펠논파)’와 ‘Kati Outinen(카티 오우티넨)’는 그의 남성과 여성적 페르소나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그들의 젊은 시절부터 늙은 시절까지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의 배우들도 그는 늘 배신 없이 함께 작업하였다. 각 영화마다 같은 인물, 다른 배역이 나오는 것은 그의 굳은 방향성을 느끼게 하면서도 의외로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잘생기지 않은 것이 공통점이다.

또한 그의 영화에서 한 가지 빠뜨릴 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아닌 개다.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는 순한 개가 출연한다. 단순히 지나가는 개가 아닌 주인공과 연관된 중요한 역할도 맡는다. 그가 개를 좋아하는 인간인 것처럼 그의 영화에는 악랄한 인간은 없다 모두 천성적으로 순한 인간들이다. 쇼맨십의 정치보다 그리고 색다르거나 자극적인 맛보다 순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고향의 맛 같은 정겨움이 깔려있는 깊은 맛처럼 모든 사람들 깊은 곳에 흐르는 따뜻한 물의 온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그리고 그 따뜻함으로 사람들의 가슴들을 은근히 적시고 있다. 그 점이 카우리스마키의 험상궂은 얼굴 뒤에 숨겨진 순박하고 투박한 무기이다.          

그의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진정한 그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영화를 고른다면 다음과 같다.

이 작품들을 다 보고 나면 곧바로 일상과 세상에 대한 색다름과 치우친 각도를 볼 수 있는 자신을 발견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발 뒤로 물러선다는 여유의 의미도 알게 될 것이다.     





-천국의 그림자 (1986)

https://youtu.be/bJWRhQAvct4


-아리엘 (1988)

https://youtu.be/LPkNFRemZrM


-나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 (1990)

https://youtu.be/yqSNU3oCi5s


-성냥공장 소녀 (1990)

https://youtu.be/QqBPnkDft1E


-보헤미안의 삶 (1992)

https://youtu.be/zXI-L_ZJxD4


-어둠은 걷히고 (1996)

https://youtu.be/xylCSwbsqI8


-과거가 없는 남자 (2002)

https://youtu.be/tc342zo-tp4


-황혼의 빛 (2006)     

https://youtu.be/iDSm46R-oTI


*각 영화의 내용은 검색하면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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