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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 Sep 22. 2022

나의 20대에게

아직 다 지나진 않았지만, 나의 20대에 미리 인사를 해야겠다.


퇴근길 우연히 모교를 지나쳤다. 모교 앞에서 버스를 갈아타야했는데, 설치된 무대를 보고 축제 중인 걸 단박에 깨달았다. 잠시 퇴근을 미루고 캠퍼스로 향했다. 무대가 가까워질수록 음악은 내게 다가왔고 그 시절의 공기가 나에게로 걸어왔다.


들뜬 사람들의 얼굴에, 내 스무살 대학 축제가 겹쳐보였다. 스물한살, 스물세살, 스물다섯의 축제들도. 그리고 내가 그때 만난 사람들도. 삼삼오오 티를 맞춰 입은 사람들, 앉아서 안주를 먹고 있는 사람들, 강의동에서 나와 수다를 떨며 웃는 사람들, 곳곳을 사진 찍는 사람들... 전부가 푸른 노래였다.


가상현실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듯, 나는 끼어들지 못할 현장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리고 정문까지 돌아나와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생각했다. 정류장으로 향하는 이 길을 나는 몇 천번 걸었을까. 혼자, 친구들과, 선배 후배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길에 남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나는 쌩뚱맞게도 좋았던 기억을 간직한 여행지들을 떠올렸다. '결국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들이지. 그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 사람들이죠.'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 저녁. 정작 이 길에서 내 가슴은 텅 비어 있다. 나는 나의 20대에 마주친 사람들에게 잘해주지 못했다.


그 후회. 이제는 억만금이 생겨도 다시 불러올 수 없는 사람들. 다시 안아주고 웃어줄 수 없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얼마나 오만했고 이기적이었는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비겁했는가...


그러나 혼자 울적하니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 이미 늦었지만, 정말 모든 걸 잃기 전에 난 다시금 일어서야겠다. 내가 구할 것은 오직 사람이요, 내가 돕고자 하는 것도 오직 인연이다. 앞으로의 모든 인연 앞에서, 나는 20대의 실수와 잘못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하고 또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인연은, 내 철없던 시절이 한번 더 허락한 기회일 지도 모른다. 그중에 내게 또한번의 푸른 노래처럼 다가올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얼굴을 많이, 가능한 아주 많이 보고 싶다.


미안했고, 고마웠고,

가끔씩 꿈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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