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절대법칙.
고교 시절부터 생겨난 오랜 악몽의 법칙이 있는데, 현실에서 정도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김없이 1) 벌레 2) 수학 문제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1)은 참아줄 만한 스트레스지만 2)의 경우에는 '현실이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강력한 경고를 내포한다.
기출변형으로는 수학이 아닌 국어, 영어 시험도 나오지만 역시 수학문제야말로 극강의 스트레스를 상징한다.
어제는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어김없이 '갑작스레'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수능 후 접할 일 따위 없었던 인테그랄의 이름을 불러보게 되었다.
가물가물 이것은 미분을 거꾸로 하는 것이란 게 떠올랐다.
그 사람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는데 - 어차피 그도 모르니까.
나는 최대한 아는 척 연기를 해가며 기호로 된 소설을 써내려나갔다.
어느 순간 교실은 부산해졌고 밑천 떨어진 나는 '대강 이렇게 해서 하면 답이 나오겠네 ~' 얼버무리며 긴장 가득한 문제 풀이를 마쳤다.
수학. 이란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미워했던 대상이다.
너무 미워했던 나머지,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 교과서만 찢어버리기도 하였다. (다른 교과서는 보관 중)
헌데 졸업 후. 신문에서 '나는 왜 수학을 싫어하는가'라는 영화 광고를 보았고, 영화를 보기 위해
난데없이 '국제수학자대회'라는 것에 가게 되었다(수학의 노벨상 필즈상을 시상하는 대회다).
영화는 대회의 한 코너에 불과했으므로, 남는 시간 동안 나는 각종 수학 관련 전시를 보러 다녔다.
?
그러다가 수식으로 화산폭발의 규모를 예측하는 전시물을 보는데, 해설자 분은 구경꾼 뒷줄에 무념무상 서 있던 나를 콕 집어 시뮬레이터를 만져보라고 했다. 그렇게 화산 규모를 키우고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학과 관련된 수많은 슬픈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이후에도 학창시절 수학은 별로 상관도 없는 삶을 계속 살아가는 나지만 가끔씩 수학이 생각난다.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 했던 악마와도 같은 존재. 수학은 '국-수-영-사'로 이루어진 내 성적표 그래프를 신발 브랜드 반스의 로고처럼 수놓은 주범이었다. 그러나 삶이란 그토록 사랑하는 이들만큼, 그토록 미워했던 것들도 이따금 상기시키는 가보다.
솔직히 요즘 내가 하는 것들이 수학문제보다도 싫은 구석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수학으로부터만 벗어나면 모든 곳이 천국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일들이 수학보다도 날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이, 끝나가는 장마에 맞춰 내 심정을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오히려 꿈에서 수학이 나와 반가웠나보다. 놀라운 일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가르쳐준 수학.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일보다는 조금은 더 쉬워보이는 수학.
힘든 시기를 회상하고 있노라니 어리석은 질문이 고개를 치켜든다.
만약 내가 수학을 극복했더라면, 지금 삶의 문제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조금더 쉽게 인정할 수 있었을까?
나는 왜 수학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을까?
전시회장에서 나는 '너와 다르게 만났더라면' 수학을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고, 선생님의 매가 아니고, 끊임없는 비교, 상하급반 분리, 단지 주요과목이라서 내가 좋아하는 과목보다 더 중시되었다는 사실 등등... 이런 것 없이 어떻게 수학과 만났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수학에 고마운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무언가가 나와는 맞지 않고, 너무나 싫다는 것이 뭔지 똑똑히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수학이 사람의 얼굴이라면 내게 이렇게 말하겠지.
"나만큼이나 싫은 이것을 아직도 좇는 이유가 뭐니?"
내 삶의 방향키를 제대로 잡아나가기 위해. 아무래도 일단은 수학을 계속 싫어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