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지하철을 탔다.
꿈에 아주 아주 오래 전 좋아했던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건 무려 12년 전. 함께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있었는데, 앨범에서 빼놨다가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의 모습에 대한 증거는 내 기억밖에 없다.
열차는 계속해서 시커먼 구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열차는 어디로 가는가, 또 지나온 곳은 어떻게 되는가. 돌아갈 길 없는 조각난 기억들을 다시 회생시킬 방법은 없는가. 시간은 묵묵히 간다, 열차처럼.
어릴 땐 카메라를 좋아했다. 학교에도 선생님 몰래 숨겨가며 반 친구들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교내 행사는 신나라 마음껏 찍고 다녔다. 틸, 팬, 줌, 트래킹 무엇하나 거칠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는 내게 부담이었다. 카메라를 어디에 놓을지가 삶을 건 선택과도 같게 느껴진다. 무섭다.
찍는다는 건 슬픔을 남긴다. 찍지 않음은 미련을 남긴다. 무엇이 더 크고 아플까. 남은 사진은 헛된 소망의 증거였던 것 같아 점점 사진 찍는 게 싫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간도 지우지 못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열차는 무심히 달린다.
지난 사진들. 큰 폴더 안에 작은 폴더로 정리된 사진 사이를 나는 빠르게 자유자재로 오고 간다. 컴퓨터 안에서는 상해에서 로마까지 단 5초밖에 안 걸린다. 그러니 넓디 넓은 대지와 바다의 면적은 체감되지 않고 나는 감당 못할 그리움의 눈사태를 맞는다. 한꺼번에 다 가고 싶다. 내 다녀온 곳을, 꼭 모조리 다시 가보고 싶다. 과연 시간은 허락하는가?
조용한 밤. 열차에서 내려 역에 발 디딜 때 나는 쾨쾨한 바람과 먼지 냄새. 지상역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잠시 꿈에서 깬 듯 주위를 둘러보고 출구를 찾아 걸어 간다. 내리는 순간 목적은 벗어나는 것 뿐인 지하철역. 터널은 익숙한 기억이 된다. 유령같은 시간이 돌고 돈다. 지상에 나온 나도 - 자전거를 꺼내어 강기슭을 따라 달린다 - 그것마저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