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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 Jun 19. 2022

멀어지는 시간

일기


지하철을 탔다.

꿈에 아주 아주 오래 전 좋아했던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건 무려 12년 전. 함께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있었는데, 앨범에서 빼놨다가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의 모습에 대한 증거는 내 기억밖에 없다.


열차는 계속해서 시커먼 구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열차는 어디로 가는가, 또 지나온 곳은 어떻게 되는가. 돌아갈 길 없는 조각난 기억들을 다시 회생시킬 방법은 없는가. 시간은 묵묵히 간다, 열차처럼.


어릴 땐 카메라를 좋아했다. 학교에도 선생님 몰래 숨겨가며 반 친구들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교내 행사는 신나라 마음껏 찍고 다녔다. 틸, 팬, 줌, 트래킹 무엇하나 거칠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는 내게 부담이었다. 카메라를 어디에 놓을지가 삶을 건 선택과도 같게 느껴진다. 무섭다.


찍는다는 건 슬픔을 남긴다. 찍지 않음은 미련을 남긴다. 무엇이 더 크고 아플까. 남은 사진은 헛된 소망의 증거였던 것 같아 점점 사진 찍는 게 싫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간도 지우지 못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열차는 무심히 달린다.


지난 사진들. 큰 폴더 안에 작은 폴더로 정리된 사진 사이를 나는 빠르게 자유자재로 오고 간다. 컴퓨터 안에서는 상해에서 로마까지 단 5초밖에 안 걸린다. 그러니 넓디 넓은 대지와 바다의 면적은 체감되지 않고 나는 감당 못할 그리움의 눈사태를 맞는다. 한꺼번에 다 가고 싶다. 내 다녀온 곳을, 꼭 모조리 다시 가보고 싶다. 과연 시간은 허락하는가?


조용한 . 열차에서 내려 역에  디딜  나는 쾨쾨한 바람과 먼지 냄새. 지상역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잠시 꿈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출구를 찾아 걸어 간다. 내리는 순간 목적은 벗어나는  뿐인 지하철역. 터널은 익숙한 기억이 된다. 유령같은 시간이 돌고 돈다. 지상에 나온 나도 - 자전거를 꺼내어 강기슭을 따라 달린다 -  그것마저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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