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90분을 앗아 간 영화
영화를 만드는 본질적인 이유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다면, 과연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예상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포스터의 메인 카피는 '돈없고 빽없는 놈이 깡패말고 할게 있나!' 였는데, 흙수저를 위한 직업 권유 영화인가?
여하튼 비장한 표정 속 일진 청소년의 포스터도 그렇고 '깡'과 '치'의 조합이 주는 쎄한 느낌의 타이틀도 불안했기에, 네이버 영화 1200원을 결제하기 직전까지 망설였지만 눈 질끈 감고 구매를 눌렀다.
주인공 형수는 성실한 유도부 학생이었으나 (흔히 그렇듯)알콜중독 아버지를 주축으로 한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갈고닦은 유도를 기본기로 소위 일진 청소년이 되어 권력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애들도 때리고 삥도 뜯고 사랑도 하고 이웃동네 일진과 권력투쟁도 하다가, 결국 덧없음을 느껴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이 변한 상황에 오열하고 마는데..
이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인데, 실로 놀라운 점은 이야기 전개 대부분이 담배 피우는 장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놀이터나 골목, 공터 같은 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무려 31회가량 등장한다. 러닝타임이 90분인 점을 감안하면, 평균 3분마다 등장인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건데, 아무튼 엄청 담배를 피워댄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도, 세상을 원망할 때도, 격투 끝에 서로의 우정을 확인할 때도 담배를 피운다.
보통 영화의 내러티브를 위해 극 중 요소를 동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쯤 되면 <깡치>는 감독이 내러티브 따윈 모르겠고 일단 담배 피우는 씬부터 찍은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찍기 위해 영화를 만든 느낌이랄까. 인물의 심경변화나 사건 전개에 개연성이 없다 보니, 단순한 플롯임에도 지금 얘가 왜 화가 나 있는 건지, 쟤는 왜 두드려 맞고 있는 건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저렇게 담배를 피우면 과연 폐가 남아나나 라는 의문과 함께 온전히 날려버린 내 인생의 90분에 대한 회한이 남았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