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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산 Jan 28. 2020

미안한 육식주의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관계가 소원해진 두 사람을 초대해 잘 지내보라는 취지의 예능프로였다. 겨울이었고, 낚시터에서 빙어를 낚으며 두 사람의 우정을 부활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무튼 애꿎은 빙어들을 제물 삼아 산채로 씹어가며 두 연예인은 점차 웃음을 찾아갔고, 살아 있는 빙어를 먹어 본 적 없는 나는, 저 빙어가 먹은 구더기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문제의 장면은 빙어를 이렇게 저렇게 먹다가 급기야 '빙어 빼빼로' 게임을 하면서부터 였다. 방송 분량이라는 채찍에 타작 맞던 애처로운 작가가 이렇게 저렇게 고민한 결과였겠지만, 나는 경악했다. 살아있는 빙어 한 마리를 출연자 두 명이 양끝에서 먹어 들어가는, 그러니까 우리가 술자리에서 꽤 취했을 때 썸녀와의 첫 키스를 할 훌륭한 명분을 제공했던 게임. 무생물인 '빼빼로'라는 과자로 하던 그 게임을, 살아있는 빙어로 했다. 꼬리와 대가리가 양끝에 물려 팔딱거리던 빙어를, 못 참겠다는 듯 비명을 지르면서도 두 출연자는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한층 더 회복된 우정에 환호하는 호스트와 멋쩍게 웃는 두 게스트의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어?"를 외치면서.


 당장 그 예능프로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렸다. 빙어를 산 채로 먹을 수야 있지만, 빼빼로 게임을 하듯 생명을 죽이는 과정을 유희로 즐기는 장면은 말이 안 된다 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조금 전 장면에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넓지 않은 집에 사는 덕분에 컴퓨터가 있는 내 방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고, 일등으로 항의글을 올렸으니 곧 많은 지지자들이 댓글을 달겠지. 분노와 흐뭇함의 감정을 느끼며,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하면서 지지자들을 기다렸다. 


 댓글은 하나가 달렸다. "이 친구 아직 어린가 보네"라는 의견이었다. 생명을 죽이는 과정을 유희화하는 것에 문제제기하는 행위와, 수정란이 되어 유기체가 된 지 몇 년이 되었는지 간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그렇게 어리지도 않았다. 다시 등판하여 댓글을 달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굉장한 포스의 무논리로 무장한 짧은 문장에 압도되었고, 쉬운 싸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육식을 한다. 굳이 먹지 않는 동물성 음식도 없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한 시판되고 있는 모든 고기류는 먹고 있는 것 같다.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어류의 고기에서 느낄 수 있는 본연의 맛이 있고, 인간은 그것을 먹을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고기를 먹는 선택을 함으로써 죽게 된 동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을 잊지 않기로 했다. 이 죄책감의 존재는 고기를 얻는 과정과 먹는 과정을 고려하게 한다. 그 고려들은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푸아그라와 샥스핀을 먹지 않는다. 활어회의 싱싱함을 증명하기 위해 함께 나온, 입을 벙끗 거리는 생선 대가리를 보며 손뼉 치며 좋아하는 사람과 잘 지내기 힘들다. 송어를 먹지만, 살기 위한 몸부림을 일종의 놀잇감으로 즐기는 축제에는 가지 않는다.


 "똑같이 위장 속에 쳐 박는 주제에 이 자식 엄청 위선 떠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복잡한 인간의 삶에서 오직 결과라는 항목만 보며 살아온 수준의 결과다. 과정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지닐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것. 같은 결과가 예상되는 일이라도 과정에 대한 숙고를 끊임없이 하는 것. 이것은 인간이 지난 얼마 없는 장점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훌륭한 인간은 못되더라도, 사악한 인간만은 되지 않는 방법이라 믿는다. 


 유일한 댓글을 달았던 분의 기대와 달리, 열 살 정도 더 먹었지만 나는 여전히 '빙어 빼빼로' 게임을 반대한다. 나는 미안한 육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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