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기산 Jan 28. 2020

막국수

 젠틀한 1회 분 젓가락질의 양. 남자는 공동의 몫으로 시킨 한 그릇 국수에서, 자신의 젓가락질 다음 차례의 조바심을 유발하지 않을 적정량을 생각했다. 그의 천성은 본인의 이익과 타인의 기분이 상충할 때, 이익을 포기하는 쪽으로 자랐다. 그게 남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이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한 조각 남은 수육은 먹을 생각이 없다.


 치사하게 기분이 나빠지기 쉬운 음식과 관련되서는 더 조심한다. 그중 공동의 국수는 예민해지기 쉬운 그라운드다. 한 번의 젓가락질에 포카혼타스 머리칼 마냥 풍성한 면발이 들리면, 다음 차례는 엄청 똥줄 타니까. 이건 음식의 영역에서 비매너의 상징이고, 남자는 무척 신경 쓰는 편이다. 물론 친한 친구나 애인과 함께 일 때도 그렇다.


 포천은 갈비가 유명하다고 했다. 꽤 괜찮은 풍경의 드라이브를 했고, 오래전 문을 닫은 채석장에 만들어 놓은 공원을 깔깔 대며 산책했다. 좋은 데이트였다. 블로거들이 유난을 떨며 소개한 갈빗집 중 가장 사람이 없을듯한 곳을 알아놓았고, 그날의 마침표는 거기서 찍기로 했다. 커플에게 가장 무난한 레퍼토리는 갈비 2인분과 막국수 한 그릇이었다. 막국수가 먼저 나왔다.


"와 오빠 진짜 이기적이다"


 첫 젓가락질을 시도한 그에게 내려진 비평이었다. 잠깐의 말다툼이 있었고, 잔뜩 나온 선홍색 갈비를 모조리 구워 먹은 뒤, 차에 시동을 걸어 외곽순환을 타기까지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고 첫 젓가락질에 들렸던 막국수의 양에 대해 생각했다. 첫 젓가락질에 들렸던 양은 정말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과도한 양이었는가. 그렇다면 애인의 비평은 정당했는가. 억울했다. 남자는 항상 이 문제를 가장 센시티브 하게 생각하고, 젠틀하게 대하려 노력해왔다. 그런 그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게, 평생의 신념을 부정당한 것처럼 억울했다. 


 아니 그보다. 이미 목구멍까지 차오른 카드값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분에 소갈비든 막국수든 먹는 만큼 실컷 사주리라 결심했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비난의 정밀타격은 서러움의 둑을 무너뜨렸다. 운전대를 잡고 막국수 국물 떨어지듯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때까지 팽팽한 묵언의 맞불을 놓고 있던 애인은 당황했고, 그는 막국수 비평에 대한 사과를 받았다.


 동네로 돌아와서 그들은 깔깔 거리며 맥주를 마시다 헤어졌다. 불콰하게 취해 집으로 걸어오면서 달을 바라봤다. 막국수에 들어있던 계란 노른자 같았다. 쪽팔렸다. 나이 든 남자들이 대수롭지 않은 일에 곧잘 서러워하며 궁상떠는 걸 볼 때, 참 별로다라고 생각했는데. 막국수 많이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꽁했다가 울었던 남자가, 노른자 같은 달 아래 서 있었다. 뭐가 그렇게 서럽고 인정받고 싶어서 그는 외곽순환도로에서 시속 90킬로를 달리며 울었던 걸까.


 후드티에는 막국수가 촉발한 냉전속에서, 침묵으로 구워지던 소갈비 냄새가 배어있었다. 페브리즈를 뿌리면서 생각했다. 나이가 들 수록 타인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망을 버려야겠다고. 인정 욕구는 궁상맞음과 연결되어 있는 나이 든 수컷의 아킬레스건 같았다. 타인의 인정이 삶의 원동력이 되면, 오늘의 비루함은 벗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남자는 막국수를 먹을 때 궁상떨던 자신과 현재를 가늠해본다. 많이 달라졌나? 그 애인은, 그녀가 그렇게 원했던 곰 같이 넉넉하고 둥그스름한 남자를 만나 잘 살고 있을까. 예민하고 모난 애인 덕분에 골치 아팠을 사람인데 지금은 그렇기를 바랬다. 남자는 남이 나를 인정하거나 말거나, 내 길을 잘 가고 있는 사람이 되길 빌었다. 다 잘 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트콤 1회 분량의 비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