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1cm 다이빙>
요즘도 아이들 방에 세계지도가 걸려있나요? 아이는커녕 조카에게도 별 관심 없는 싱글인 저는 잘 모르겠는데,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종종 방 한편에 거대한 세계지도가 붙어 있곤 했습니다. 아니면 지구본이 있었죠. 지구본도 세계지도도 없던 저는, 친구 어머니가 쟁반에 담아주신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대며 우와~ 하고 지구를 쥐포처럼 다려놓은 듯한 거대 지도를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경우, 지도 귀퉁이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죠.
'boys, be ambitious'
흙투성이 남자애들끼리 몰려다니며 놀았으니, 여자 친구들의 방에도 세계지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과연 거기에도 'girls, be ambitious'가 적혀있었는지 알턱은 없었습니다. 다만, 저 세계지도의 목적이 단순히 이 행성의 지형과 국가 경계선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데 있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죠. 사실 그 지도는 부모의 염원이 담긴 매우 정치적인 부착물이었습니다.
'전 세계를 과자처럼 씹어먹을 만큼 능력 있는 인간이 되거라'
자기계발서 시장에 성공론이 굉장한 인기를 얻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흔히 <성공하는 ○○○ 법칙> 이라든가 <○○○에 미쳐라> 형태의 문법으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죠. 당시에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많은 성인들에게 지상명령 같이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불변의 가치는 없죠. 원대한 포부를 가리키던 손가락은 '힐링과 위로'라는 키워드를 거쳐 '소확행'을 지나, 급기야 '1cm 정도 다이빙'을 해보자는데 이르렀습니다. 1cm 다이빙이라니?
네, 지름 12,742km 지구를 5평짜리 방안에 세계지도로 붙여놓고 야망을 외쳤던 세대가 자라서, 이제는 딱 요만큼, 그러니까 1cm만 다이빙해도 행복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1cm만큼의 다이빙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일상에 치이며 사는 우리도 1cm 정도 현실을 벗어나 보며 행복을 찾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집에 오면 5g짜리 종이 한 장 넘길 힘조차 말라버려, 어느새 어제와 같이 넷플릭스를 로그인하고 있지만, 마음 한편엔 대체 언제까지 무의미한 매일을 반복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꽤 괜찮은 책입니다. 책에 소개된 1cm 정도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들은, 사실 대단치 않은 일들이지만 그래서 무척이나 실천하기 쉬운 일들입니다. 그리고 쉬운 난이도에 비해 효과가 꽤 좋으니까 가성비가 괜찮은 자기계발서이기도 하구요.
아 물론, 이 책은 서점에서는 에세이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다만 힘을 한껏 빼고 편안하게 읽을만한 자기계발서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자기계발서의 본질이 결국 자신의 행복을 찾게 해주는 데 있다고 본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