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바흐만 고바디 2004)
'아낭케'란 말은 흔히 '숙명'이나 '운명'으로 번역되는 말로, 인간이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적 고통, 고난과 같이 인간 삶의 부정적인 조건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 평론지의 글에서 이 영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영화의 주인공인 쿠르드족 아이들의 고통스런 아낭케적 삶을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인 아윱은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마을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 아이로, 국경사이를 오가며 밀매를 하다가 지뢰를 밟아 죽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나머지 동생들을 데리고 살아간다. 전쟁과 피난이 일상이 된 쿠르드족 아이들의 삶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 물론 고바디 감독은 이 아이들의 모습을 절대 희망적으로 그려내고 있지 않다. 관객들은 아윱이 불치병에 걸린 형을 살리기 위해 국경의 철조망을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아윱은 실패했을 것이다.
분명히 좌절 할 꿈이었지만, 이들은 살아있기 때문에 담담하게 철조망을 넘는다. 그게 인생이고, 아낭케적 삶의 필연성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좌절 될 꿈이지만 희망으로 맞서야 한다. 운명에 맞서서, 운명과 더불어.
너무나 춥기 때문에 말에게 술을 먹이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국경을, 그렇게 아윱은 운명과 맞서며 넘어간다. 이때에 혹독한 국경은 아이들에게 주어진 아낭케적 삶을 의미한다. 위험한 지뢰와 혹독한 추위에 맞서 국경을 넘어갈 때 비로소, 그는 오롯이 온몸으로 아낭케적 삶을 살아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쿠르드족인 고바디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영화를 투박한 영상속에 담담하게 그려낸다. 인간이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고난. 이 아낭케를 나는 지금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스물여섯, 지금 내 삶에 던져진 아낭케는 과연 무엇일까.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