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 감정을 잘 다뤄야 한다

by 표고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몇 개의 모임이 있는데 지난 주말 모임 후 뒤풀이에서,

MBTI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연애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가장 어려운 점이 어떤 건지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A라는 사람은 연락하는 걸 워낙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다방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

영화, 희곡 등 감상평을 듣고 있자면 평 자체가 창의적일 뿐 아니라

본인의 그런 생각을 자신감 있게 아주 잘 표현할 줄 아는, 장점이 많은 친구였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상식과 조금 달리 행동하여 관계에 문제가 될 만한 점이 있긴 있었다.

가끔 이런저런 모임 후, 굉장히 늦은 시간까지 음주를 즐긴다는 것.

취할 때까지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는 그런 술자리를 갖는 건 아니었고

새벽 시간에 여러 사람과 깊은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는 게 A의 입장이다.


A는 연락 횟수나 빈도 때문에 20대 내내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애로점이 있었지만

현재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연인은 그 점에서는 처음부터 잘 맞았고

그 문제로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



전에 만나던 사람들은,
집에 자꾸 일찍 가라는 거예요.
걱정된다고.
그래서 얘기했어요.
나는 너를 만나기 전에도 이렇게 살았는데
아무 사건 사고 없었다. 걱정 마라.



그리고 이 얘기를 듣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누군가는 그래도 몇 시쯤 들어갈 계획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연락 안 되는 사람은 못 만나요.
연락 패턴이나 싸울 때 성향 같은 건
애초에 안 맞을 것 같으면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요.



이 말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자, 그렇다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실시간으로 그 사람이 어디에서 누굴 만나, 뭘 먹는지 알아야 하는가.
그 사람이 늦게 귀가하는 게 싫은 이유가 정말 ‘걱정’인가.
연락 패턴 말고 나를 힘들 게 하는 건 어떤 게 있는가.
조건 충족인 먼저인가,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인가.



마지막 질문부터 생각해 보자면, 나는 마음이 먼저였다.

물론 마음이 가기 전에 누군가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나열할 순 있다.



직업이 있어야 하고, 뚱뚱하지 않아야 하고,
공유할 수 있든 없든 취미가 있어야 하고,
꾸준히 하는 운동 1개 이상, 불안형과 회피형 안됨,
수도권 거주, 예의 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기왕이면 좋으신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

.

.

.

세상에 끝도 없이 나열할 순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도대체 저게 무슨 소용인지.


어? 아침에 눈 떴는데 이 사람이 생각나네,
어? 맛있는 떡볶이 먹으니까 이 사람이 생각나네,
어? 잠들려고 하는데 또 이 사람이 생각나네,
어? 새벽에 잠시 깼는데 꿈에 이 사람이 나왔네? 또 이 사람이 생각나네!
어?! 나 이 사람 좋아하나 봐.
이미 빠졌다!



나의 경우, 연애를 시작하던 그때 그 시기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이미 충족된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다.

위험을 감지하는 인간의 본능같은 거랄까.

예를 들어,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예의 없는 사람을 좋아한 적은 없는데, 이런 게 아마 필수 조건일 것이다.

그러니까, 뭔가를 따져서 고른 결과가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그 후, 맞춰가야 하는 부분에 ‘연락 빈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취미’ 같은 게 있을 뿐.






그럼 이제 <연락 빈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도 연락 빈도가 높은 사람 중 하나인데,

반대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괴로움을 느끼다가 그 괴로움의 실체를 알고자 깊이 고민해 봤다.

결론은 내 괴로움에 실체 같은 건 없다는 거다.

그 사람은 나를 괴롭힐 생각조차 없는데

그냥 내가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거다.


그 사람이 계속 바뀌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을 건가.
아니지,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괴롭지 않은 일인가.
그것밖에 안 되는 마음이었다면 진즉 헤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결론은, 내가 바뀌면 되는 문제였다.

그럼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이 괴로움은 왜 실체가 없다는 걸까.


종일 핸드폰을 만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핸드폰을 보는 행위는 내 기준엔 ‘예의 없음’의 영역이다.

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장점을 계속 가지고 살기 위해선

사실 핸드폰을 많이 보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또, 그 사람에게 일찍 들어가라고 하는 건, 정말 걱정일까.

걱정도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20% 내외 정도 밖에는 안되지 않을까.

내가 없는 곳에서 신난 그 사람의 표정과, 그 표정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싫은 게 아닐까.

아주 후진 질투, 백만 가지의 질투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아니면 그냥 내 통제 안에 두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아주 후진 소유욕 같은 것.



다른 거 할 때도 나한테 톡은 계속해야 해!
질투 나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웃지 마!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만 있어!


라고 요구해서 상대방이 그렇게 해준다면,

그래서 해결이 된다면, 내 생각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후진 마음을 어여삐 여긴 그 사람이

이런 하찮은 요구를 들어준다면,

머지않아 내 곁의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은 벌써 내 곁을 떠날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두려운 건 그 사람이 내 곁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바꾸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본 순간,

모든 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을 거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안한 일이다.

그러니, 조금은 멀리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살금살금 사랑해야 한다.



물론 대화와 타협점은 항상 필요해...


작가의 이전글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