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4.
2019년 생애 첫 집을 샀다. 그리고 2026년 2월, 그 집에서 떠날 예정이다.
주말 아침, 커피 한 잔을 내려 볕이 잘 드는 거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사람과의 이별, 물건이나 공간과의 이별 모두 아름다울수록 마음이 괴로워지는 법이니 이사를 한 달 앞둔 이 시점에선 아무래도 아프고 힘든 것을 떠올리는 게 내게 좋은 일이겠지.
이 집은, 지금은 헤어진, 10년 정도 만나던 사람과의 세 번째 보금자리였다.
1층이 올라서기도 전 계약한 아파트. 한 층, 한 층 키가 커질 때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 기쁨과 별개로 그런 새로운 환경은 사람의 가치관을 새로이 만들어 주기도 하고, 숨겨왔거나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던 욕망 같은 걸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드러낸 욕망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 됐다면 좋았겠지만 서로의 차이만 느끼게 해, 날카로운 이빨이 된 것이, 보고 싶지 않았던 민낯을 들켜버린 것이 이별의 원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이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안방에 붙여놨던 매트리스 2개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에 떨어트려 놓았고, 그렇게 우리는 각방을 썼다. 내 불면증이 표면적 원인이긴 했지만 어쩌면 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이제와 든다.
그리고 2025년 고양이별로 떠난 내 2호 고양이의 건강이 악화되어 1호 고양이와 분리해야 했는데 그러느라 집 한가운데에 거대한 방묘문을 설치한 것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 집, 두 살림.
두 사람을 감싸고 있던 모든 것이, 너희 둘은 찢어져야 한다고 설득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는, 졌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빈 방이지만 한 때 내가 쓰던 현관 쪽 방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었는지, 지금도 그 방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슬픔이 차오르곤 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괴로워 한 마리의 야행성 고양이처럼 휑한 거실과 부엌을 얼마나 어슬렁거렸는지.
불면 같은 건 모르는 그 사람이 행여 내 발소리에 깨지 않을까 안방 문을 조심스레 닫았던 기억.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일어나 달걀을 삶고 사과를 깎고 있으면, 잘 잔 말간 얼굴로 “잘 잤어?” 묻는 해맑음에 언젠가부터는 의미 없는 투정도 멈췄던 기억.
항불안제 단약으로 추위 혹은 더위에 식은땀으로 옷을 적셨을 때도 나는 단 한 번도 내 방 문을 열지 않았다. 아침까지 한참이나 남은 시간에 다시 절망하기 싫어서였는데, 그 문은 내가 열고 나가지 않으면 영영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외로웠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꽤 오랜 시간, 꽤 많고 깊은 걸 그 사람에게 바랐던 것 같다.
뭔가를 바란 내가 잘못이었고, 아픈 내가 잘못이었고, 모든 면에서 내가 더 어리석었다.
그래, 내가 잘못한 거 다 인정할 테니 제발 그만해.
왜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진심 아니잖아.
진심이야? 진심이구나.
또 그 얘기. 제발 그만해 줘.
제발 작게 좀 얘기해 주면 안 될까.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아니 잠깐만 나갔다 오면 될 것 같아.
내가 나갈게.
너만 먹어, 나는 지금 먹으면 아플 것 같아.
가슴이 갑갑해. 여기가 아파.
제발 그만. 그만해.
이제 그만 노력하고 싶어. 그래, 그만하자.
이별이라는 게, 이제와 이렇게 쓰면서도 힘이 든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가득한 이 집이, 이렇게나 예쁘다.
하지만 예쁘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 우리는 헤어지는 중이다.
이미 이 공간도 내겐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이별 같은 건 없으니, 모든 게 준비된 셈이다.
이 집에서 새롭게 배운 건 여유로운 공간과 시간, 넉넉한 주머니 사정 같은 것들이 마음을 채워주진 못한다는 것이다.
조금 작고, 조금 덜 여유로워도 괜찮으니 나는 다른 곳에서, 다른 걸, 다시, 시작할 거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