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카드의 의도

2025. 12. 25.(2)

by 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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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거의 매년 연말이면 부서 동료들에게 카드를 쓴다.

꼭 크리스마스 이틀 전날까지 ‘올해는 쓰지 말까.’ 고민하다가 부랴부랴 저렴한 카드를 급하게 공수하여 썼는데 올해는 정말 좋은 마음으로 12월 초 일찌감치 카드를 사놨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일찌감치 사놓는다고 해서 ‘올해는 쓰지 말까.’ 고민을 안하진 않는다는 걸.


12월 23일까지 책상 위에 쌓여있는 카드를 숙제처럼 보며 고민했다. ‘아, 조금 귀찮은데...’

하지만,

"작년처럼 카드를 샀어요." 라는 말을 상사에게 해버렸으니 안 쓸 수도 없다.

사실 부서 내 모든 사람에게 쓰고 싶은 건 아니다. 정말 마음을 전하고 싶은 건 서너 명 남짓인데 스무명 가까이되는 사람에게 다 써야 한다니. 이렇게 비효율적일 수가 없지만 이게..... 어른의 삶이겠지.

부서에 너무 싫은 사람이 있던 시기를 빼곤 매년 하던 일이지만 매년 귀찮고, 그리고 매년... 막상 시작하면 좋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올해도 쓴다.


우선 펜을 잡고 해야할 일 첫 번째,

받는 사람의 이름을 카드 맨 위에 적은 후, 그 사람과 자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그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 걷는 모습, 발걸음 소리 같은 것도.

그러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은 착각이 잠시 든다. 이 착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행복해진다.


두 번째, 짧지만 진심 어린 몇 가지 칭찬과 더 나은 새해를 비는 인사말을 쓴다.

그러고 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또다른 착각에 조금 더 행복해진다.

어쩌면 이 카드에 담긴 숨겨진 진짜 의도는 이걸 수도 있다.


'올 한 해 성질 더럽고, 입도 험하고, 엄청나게 이기적이고,

하루종일 궁시렁대기만 하는 나를 견뎌줘서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렇게 반성하고 있으니 미워하지는 말아주세요. 귀여워해 주면 더 고맙고.'


불순한 의도다.

쓰고 나니 정말 이 의도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흠, 이건, 신종 관종인가.

모르겠다.


나 귀여운데. 앞으로도 쓰다듬어 주세요! 귀여워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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