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몇 개월 만나던 사람이 있다.
집이 가까웠고 직장도 탄탄했고, 무엇보다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 헤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나랑 같은 사람이었다.
아마 나도 그 사람도 서로의 외적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가치관은 잘 맞았기에 조금은 쉽게 연인이 됐던 것 같다.
나는 두 사람이 만나면 관계 자체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상대방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관찰하고 노력해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랑'이라는 게 존재했던 관계에서만 생긴다. 변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는 관계에서의 노력은, 하기 싫은 일 하나를 더 얹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지쳐버리고 만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그런 관계였다.
아주 잠깐-정말 며칠- 뜨거웠던 기간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대화는 잘 통했지만 이상하게 '현재'에선 모든 게 어긋났다. 다르게 살아온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게 될 리 없지만 정말이지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아서 만나면 모든 걸 노력해야 했다.
그래, 맞아, 그렇지.
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없었고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
가 전부였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사소한 이유들로 꽤 자주 싸웠고 3 개월 채 되지 않아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내가 차였다.
통화 중에 헤어지자, 가 끝이었다. 분명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도 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 이별 통보를 들으니 우선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어? 아직 나는, 그래도, 노력할 마음이 있는데?'
정도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네가 나를?'
같은 알량한 자존심이었으려나.
정말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빨리 헤어졌어도 되는 사람이었는데 울고불고 매달렸다. 자존심이었는데 왜 자존심을 버려가며 울고불고 매달렸을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퇴근길, 그 사람 집 앞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오기를 한 달쯤 하니 5kg가 빠졌다. 걸어서 2시간 거리였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때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맘때쯤 이미 사랑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미칠 것 같은 마음이 5kg가 빠질 동안 내내 지속됐을까.
한 달 동안 그렇게 살이 쭉쭉 빠지던 중 그 사람과는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전화로 헤어졌으니 마지막으로 얼굴은 한 번 보고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그 사람의 눈빛은 이미 얼음장이었고, 난 그 얼음장 같은 날카로운 눈빛에 마음이 찢겼다. 사랑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마음도 찢길 뭔가가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정말 아껴주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부모님이나 정말 절친한 친구 같은.
내 마음이 찢길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밀어 넣고 살다가
정말 갈기갈기 찢겨 마음이 조각나 버린 어떤 날 갑자기,
이 조각들을 보고 속상해할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때가 바닥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금세 의지 같은 것이 생겼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최면 비슷한 것에서도 비로소 깰 수 있게 됐다.
짧지만 지옥 같던 시간이 끝난 것이다.
이 지옥 같던 시간을 떠올리는 게 크게 괴로운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그 이상한 껍질을 깨고 나왔고
지금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별의 기억은 한편으론, 성취의 경험 같다.
또 시련이 와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는,
처참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