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도, 친구들도,
이제 떠나갈 일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을 때,
내 옆에서 나만 바라보는 고양이 얼굴을 보는데
이 놈조차 나보다 먼저 떠날 수밖에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 때,
장기 연애가 끝난 후, 그 기간 동안의 미움과 사랑, 사소하지만 가득했던 감정들이
정말 모두 없어졌다는 걸 자각할 때,
자기 위해 카페인을 참고, 술을 참고,
하기 싫은 운동을 하다가 문득
잠들기 위해 사는 게 아닌지 의심될 때,
사랑이 뭔지에 대해 써 내려가다가
그 사람에겐 내가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애써 구석으로 밀어놓고 모른 척할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
피곤해서 쓰러지듯 다리를 쭉 뻗고 누웠는데
팔, 다리가 저려 잠이 쉬이 오지 않을 때,
눈 뜨니까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 때,
맛있는 것도 맛없다고 느껴질 때,
매월 생리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분기에 한 번쯤 이렇게 깊은 불행에 빠져있다가
잠이나 자야지, 하고 눈을 붙인다.
자고 일어나면 이 생각들 중 반은 없어져 있지만
사실은 내 어두운 곳에 계속 머물고 있는 생각들.
하지만 잊고 살아야 하는 생각들.
왕가위는 번뇌를 떨쳐버리기 위해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한다는데
난 어떤 기억으로 번뇌에서 벗어날까.
그래도 불행을 느끼는 순간이 많지 않은 것에 감사하려다가 이 와중에도 억지로 긍정을 끌어내려는 것이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서 멈췄다.
자자- 망각의 동물!
불행도 오늘은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