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고민할 때, 명리학 입문 이야기(1)

by 표고

몇 년 전, 오랜 기간 연인 관계를 유지해 오던 A와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던 해, 명리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별의 마음이 들었던 뚜렷한 이유가 없었으므로 헤어짐을 말한 나도, 그 얘길 듣는 A도 힘든 나날을 보내던 시기였다. 여기서 뚜렷한 이유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바람, 도박 같은 것이었다.

삶이 힘들어지자 궁금했다. 나 때문인지, 너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무엇 때문인지.






A와의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두 번째 집에서도 왕복 세 시간 남짓했던 A의 통근 시간은 세 번째 집에선 네 시간이 걸릴 예정이었고, 이사를 몇 개월 앞두던 때에도 별다른 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별을 떠올렸던 건 이미 더 좋은 근무 환경을 위해 한 차례 직장을 옮겼던 A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 A의 성격 때문에 사실은 조금 무서웠던 것도 같다.


세 번째 집을 분양받은 건 나였다.

가진 돈이 별로 없었기에 갈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다. 살아오던 곳과 멀지 않은 지역이었지만 나에게도 낯선 동네였다. 그곳에 집을 산다고 할 때도, 그 아파트가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A는 나보다 더 기뻐했다. 입주를 하면 통근 시간이 네 시간 걸린다는 걸 A는 생각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통근 시간에 지치면 A는 나를 원망할 거라는 걸. A는 자신의 직장이 더 멀다는 사실에 이미 나를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이별을 얘기하면서 이 얘기도 빠짐없이 나눴었다. 나는 이 점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A의 통근 시간이 나보다 더 괴로운 건 사실이었기에 원망한다면 어느 정도 들어주면서 품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A가 이별을 선택하진 않았으니 마음은 그대로라 치부하고, 그냥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원망하겠지. 내가 그런 성격이긴 하지.

A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좋을 땐 받아주다가도 그 원망이 반복되면 이렇게 말할 사람이었다.


네가 희생하는 건 인정하지만, 네 선택이었어.
계속 내 탓이라고 얘기하는 건
더 이상 듣기 힘들어. 내 그릇이 작은가 봐.



나는 모든 상황을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그런 성향을 핑계로 교묘하게 회피하는, 조금은 비겁한 사람.

나는 진심으로 내 그릇이 작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A보다 내가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복잡한 걸 그냥 간단히 말해보자면 '성격 차이'였다.






A는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 편이었고,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안 좋은 일에 대한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며 삶을 견디는 사람이었다. 화가 날 때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대할 때보다 더 남처럼 굴며 말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 성향은 관계가 친밀해지고 사랑이 옅어질수록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삶이 팍팍해지자 모든 분노가 주변으로 향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항의와 불만을 쏟아놓는 일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빨리 뛰었다.

그렇다고 A가 사람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두려웠고, 눈앞에 보이는 삶의 변화를 함께 견딜 자신이 없었다.


A는 장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나는 먼저 베푸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기특해했고, 그 덕에 나도 A만큼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베푼 만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마음이야 귀여워하면 될 일 같았는데, 나는 그조차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또, A는 사람을 볼 때 장점을 먼저 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평소엔 사람들에게 한없이 다정했다. 나에겐 특히 그랬다.

함께 살면서 무언가가 필요한 순간,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방문에 급히 무언가를 대접해야 할 때나, 명절, 가족들이 모인 상차림에 맛있는 음식을 사 오기 위해 먼 거리까지 가야 할 때, 그럴 때 단 한 번도 귀찮아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지출의 규모는 내 생각과 많이 달랐지만,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그런 다정함이 있었다.

반면,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명리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간의 시간 동안 책을 몇 권쯤 읽었고, 이런저런 강의를 듣고 나니 한 사람의 사주팔자를 보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대충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후, 열어본 A와 나의 사주는 생각대로 정말 정반대였다. A가 가진 여덟 글자엔 양의 기운이 가득했고, 내 여덟 글자엔 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정반대라서 궁합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정반대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