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안정' 이라고 믿어온 것들에 대한 건강한 의심

by 표고


어떤 조직에 새로 속하게 되면 적응 기간이 꼭 필요하다.

몇 시가 점심시간인지 상급자와의 관계는 어떤지,

일의 강도와 바로 옆 동료와 말은 잘 통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그 사무실, 그 책상에 앉아있을 때의 내 기분,

내 주변 사람들이 그 조직 속의 나를 어떻게 보는지,

같은 조금 복잡한 것까지.


사실 처음엔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한 뼘쯤은 버티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조금만 더 버텨볼까, 라는 생각으로 1년이 지난다.

그리고 큰 의미나 큰 시련 없이 2년, 3년이 지난다.

그렇게 적응이 되면 그 조직과 환경이

이미 나의 한 부분이 되어 ,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조금은 멍청해지고 대신 조금은 편안해진다.

비로소 '안정'이다.


사람들은 이걸 '안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넓은 의미로의 삶은, 좀처럼 안정을 찾기가 힘들다.

흔들리는 마음은 기본값이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를테면,

직장이나 결혼 같은 것으로 '안정'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컨트롤할 수 있고 안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 분야의 불행이 시작된다.

그것들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관계의 영역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 혼자만의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있다고 해도,

나조차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기 때문에

안정이라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다.



어제의 나는 외로웠다.

오늘의 나는 외롭지 않다.


왜 변했냐고 묻는다면 어떤 게 이유가 될까.

운동이나 수면의 질, 그리고 골똘한 생각의 끝 정도?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도 모두 안정적이지 않다.


우리 모두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 외엔

그 죽음이 뭔지,

죽기 전 인간이 느끼는 것이 고통인지 전희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영영 삶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 불안에 떨며 살아간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

아! 이게 삶이구나!

깨닫고,

깨닫는 순간, 죽는 게 아닐까 싶다.
여운 존재다.


변하지 않는 것을 안정이라고 말한다면,

우리 모두는 혼자 죽는다는 사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르듯, 너도 그럴 거라는 사실,
진짜 '안정'이라고 믿어온 것들이 사실은 '안정'이 아니라는 사실

이런 것들을 '안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변하지 않는 이런 사실들은 빨리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짜 이 삶에 적응할 준비가 된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적응하지 못한 채 불안한 하루를 시작하는 나 자신에게

힘 좀 내라는 의미로, 이 쓸데없는 생각을 깊이 해본다.


방금 깨달았는데,

동료들에게 아침인사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도

사소한 안정인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