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연예인병' 아닌가요? ㅎ

비 온 가을날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낙엽처럼

by 글터지기

일러두기 : 흰머리 소년은 제 아버지입니다.

15년 전 뇌경색으로 한 번, 7년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한 번.

두 번의 생사를 넘기시고 저와 함께 생활하고 계십니다.



흰머리 소년이라고 1년 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써왔습니다. 두 살 터울의 캐나다에 이민 간 여동생 '말로만 효녀'는 매일 흰머리 소년과 통화하며 진짜 말로만 효녀짓을 하고 있습니다. 조카 두 명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항상 볼 수 있다며 제 블로그를 찾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내가 어디에 아버지 이야기 쓰고 있는 걸 비밀로 해라'라고 당부하고 당부했건만, 흰머리 소년의 DNA는 유독 말 안 듣는 쪽으로 대물림을 해주셨나 봅니다. 조카들이 흰머리 소년께 전화를 드려서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할아버지 소식은 외삼촌 블로그에서 잘 보고 있어요"

그 순간 모든 비밀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부작용의 시작이었지요.


이상한 점은 분명 제가 제 노력을 기울여서 '흰머리 소년' 일상을 쓰고 있는데, 제 일상을 쓴 글보다 흰머리 소년 글이 주변으로부터 반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겁니다. 흰머리 소년께서 혹시 은근히 이런 장면을 즐기시고 있는 건 아닌지 아주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분명히 글은 쓴 건 저인데, 왜 인기는 흰머리 소년이 다 가져가냐고요. 하하하

이건 분명히 바다 건너 '말로만 효녀'의 천기누설이 가져온 부작용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흰머리 소년께서도 어디서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시면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십니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러신 분이 아니시거든요.


며칠 전, 가족 단톡방에 '카톡'이 울립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도착한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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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생전 찍으시는 분이 아니신데, 요즘은 이런 걸 즐기시는 취미가 생긴 듯해서 웃음이 났습니다.


그래서 여쭤 봤지요.

"누가 찍어 주셨어요?"

"미용사가"


아마 집 앞 미용실에서 머리 다듬으시고, 커피믹스 한 잔 걸치시고 뒷마당 장미꽃이 예뻐서 미용사 사장님이 한 컷 찍어주신 것 같습니다. 이사 온 동네에 중국집 사장님, 미용실 사장님, 동네 공원 앞 어르신 들 모두 참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머 할아버지가 어딨는지 못 찾겠네~. 하도 꽃 같으셔서~"

우리 집 저승사자가 살갑게 답합니다. 물론 저는 빵 터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흰머리 소년의 얼굴이 참 환해지셨습니다. 아이들도 입담이 늘고 따뜻한 마음이 오고 갑니다.


저도 가끔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 인물이 훤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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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흰머리 소년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주 거창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게 아닙니다. 글을 잘 써서 좀 더 유명한 사람이 돼야겠다 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흰머리 소년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5년 후에 지금까지 써 온 글을 묶어 제본해 드리기 위해서.'


15년을 함께 살면서 그다지 살갑지 않은 아들이고, 지금도 그다지 살갑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뇌경색과 심근경색을 기적처럼 견뎌오신 흰머리 소년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들이 써주는 아버지의 일상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기도 합니다.


잘 모으고 모아서 프린터에 연결하고 글씨를 크게 출력해 볼까 합니다. 하하하


그런데요,

흰머리 소년 소식에 압도적인 반응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 것은 확실한 일입니다만, 저는 그 와중에도 배가 아픕니다. 분명히 제가 순수하게 제 노력으로 쓰고 있는데 흰머리 소년만 '연예인병'이 도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질투가 나나 봅니다. 하하하


나중에 이 글을 출력하면 아래 부분은 더 크게 출력해야겠습니다.


'아버지! 온라인에서 아버지 인기가 올라가는 건

다 이 잘난 아들 녀석 덕분인 겁니다.

그러니까 자꾸 무슨 일이 있으면 자꾸

바다 건너 말로만 효녀한테 이르지 마시라고요~"


흰머리 소년이 더 유명해지면, 저는 가을비 맞은 아스팔트에 붙은 낙엽처럼 옆에 찰싹 붙어 있을 겁니다.

떨어지는 콩꼬물은 덤이고, 웃음과 추억은 필수로 챙기면서요.


오늘의 흰머리 소년 소식이자, 제 본심이기도 한 소식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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