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소년의 독백 앞에서

하루하루가 축복이길

by 글터지기

며칠 전, 흰머리 소년과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집안 어르신 부음을 듣고 다녀온 길이지요


충주에서 춘천까지 두 시간 남짓한 거리이고

왕복해야 할 시간을 계산하면 꽤 많은 시간입니다.


명절이나 벌초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쉽게 다녀올 수 없는 길입니다.


말씀이 많아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로 시작해서

"지금 남아 있는 집안 어른은 세분인데.."까지.

끝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종친회 총무를 오래 지내오신 흰머리 소년은

집안에서 거의 모든 분들과 인연이 깊으시죠.


반면, 저는 젊은 시절 군에 있었으니

집안 대소사에는 거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참석해도 잘 모르는

어른들이 많으십니다. 눈에 익은 분들도

여러 번 인사드린 분이 아니라면

우연히 마주쳐도 선뜻 알아보지 못하지요.


세대가 내려 갈수록 이런 경향이 더 할 겁니다.

제 아이들을 봐도 분명히 느껴지는 일이지요.


함께 뛰어놀고 고생하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설마다 세배를 하러 다녔다.

눈이 오면 산을 넘어가는데 힘드니까

작은할아버지가 날 업고 고개를 넘었다.

그때는 왜 그리 추웠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고난을 함께한 경험은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가슴에 새겨지나 봅니다.


이래서 어릴 때는 친구들과 뛰어놀라고 하나.

공부하는 일보다 더 오래 남는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도 덩달아 늘어난

흰머리 소년은 장례식장 자리에서도

말끝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제게 어르신들은 늘 말씀하십니다.

"네가 아버지 모시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어른들이 누구인지 정도 알게 됐으니

저도 참 무심하게 살아온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흰머리 소년의 한 마디가 제 가슴에 오래 맴돕니다.


"이제 갈 일만 남았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독백이지요.


평소 운동 좀 하시라고 화를 내게 되는 이유도

제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혼자 남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흰머리 소년의 독백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함께하는 오늘 하루가 감사할 뿐입니다.


매일 아침 기적을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하루를 축복처럼 살겠습니다.


모두, 축복 같은 목요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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