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잇는 기념일, '벌초하는 날'의 변화

아버지! 쫌!!!

by 글터지기

매년 추석 전 이맘때쯤이면

고향 선산에 벌초를 다녀옵니다.


선산에는 11장의 묘가 있어서

왕복 여섯 시간을 오가고,

예초기 작업을 하고 오면 온몸이 쑤셨습니다.


이제는 집안 아이들 중 누구도

벌초를 다니지 않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고 있기도 하고,

쉬는 날 하루 종일 노동하는 일이니까요.


이제야 저도 어른들 사이에서

한마디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재작년 집안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형님. 벌초하는 건 외부에 맡기고,

비용이야 나눠 지불하는 게 어떤가요?

차라리 그 시간에 집안 어른들, 아이들

선산에 모여서 인사드리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갖는 게 더 좋겠습니다."


"어른들이 벌초는 직접 해야 한다고 해서.."


"매년 참석하는 저도 이래서야 힘들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제 더 나이 들면

예초기 돌릴 사람도 없을 거고

친척들 얼굴 보기도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그래 한 번 이야기나 해 보자"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 게

종친회 모임에서 그리하자고 결정이 됐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시행했습니다.


예초기를 점검하고 준비하는 노고를 줄였지요.

벌초라는 노동이 사라져서인가

평소 참석하지 않던

집안 여성 친척도 많아 오셨고,

사촌 가족들도 대거 참석했습니다.


간단한 먹거리를 각자 준비해 와서

묘소에 세배하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이제는 어른들이 더 좋아하십니다.

벌초도 깔끔하게 돼있고, 힘은 덜면서

이날 모이는 친인척이 늘었으니까요.


오늘이 흰머리 소년을 모시고 고향 가는 날입니다.


분명히 예상하건대

08시에 출발하자고 약속을 해 놓았는데,

아마 07시부터 옷을 차려입고

거실에 나오셔서 식탁에 앉아 저만 바라보실 겁니다.


괜히 거실을 오가며 라디오도 켰다가,

과자도 이것저것 챙기시다가,

형광등도 껐다 켰다 하시겠지요.


1년에 한 번 고향 나들이를 하시는

흰머리 소년은 손꼽아 이날을 기다리십니다.


왕복 대여섯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아들놈은 피곤하든지 말든지,

"빨리 출발하자"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하하하


오늘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흰머리 소년 입장에서는

1년에 두 번, 이런 날이 아니면

고향 다녀오실 일이 없고

어릴 적 함께 놀던 사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니 설레는 날일 겁니다.


시대도, 각자의 마음가짐도 변화합니다.

돌아가신 조상 어른들을 추억하는 일은

지금을 살아가는 후손들의 왕래와 친목,

마음을 나누는 일부터 시작일 겁니다.


벌초라는 행위 자체가 핵심이라기보다

만나서 인사 나누고 격려와 덕담이

오가는 자리가 더 소중한 게 아닐까요


일기예보를 보아하니, 비가 예상됩니다.

오늘 흰머리 소년과 다녀 올 길도

피곤하고 지칠 겁니다.


하지만 한 해를 이어주는 따뜻한 기념일에

웃음 가득한 흰머리 소년 모습을 상상하니

일찍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겠습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분명 거실에 나오실 겁니다.

이제 슬슬 일어나실 때가 됐습니다. 하하하


아이쿠야.. 말하기 무섭게

방금 거실에 나오십니다.


"아버지!,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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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선산에 다녀온 오늘 이야기는

'흰머리 소년과의 요절복통 항해기'에 담겠습니다.


1920년 오늘은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가

고문에 의해 옥중 순국한 날입니다.


이화학당 학생으로

고향 천안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서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모진 고문을 견디다 생을 마감한 유관순 열사.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이

그분이 지켜내고자 했던 일상일 겁니다.

오늘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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