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저승사자'가 삽니다. 하하

우리 집 저승사자가 집에 온 날

by 글터지기

올해 초, 중등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우리 집 저승사자(딸아이)가

예방 접종을 겸해서 갑자기 집에 들렀습니다.

*우리 집 저승사자 :

우리 가족 중 가장 무서운 아이입니다.

잔소리 대마왕쯤 될 겁니다. 하하하)


사회 초년생이고, 직장 막내여서

몸도 마음도 바쁜 시기라 자주 보지 못했는데

모처럼 들리니까 집이 환해졌습니다.


제가 퇴근해서 들어올 때는

쳐다도 보지 않으시던 흰머리 소년께서

손녀 들어오는 문소리에는

벌떡 일어나서 반기십니다. 하하하


시 외곽에 있는 단골 식당에 예약을 했습니다.

흰머리 소년의 식성을 고려해서

불고기와 삼겹살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지요.


금요일이라 홀에는 예약이 다 차 있어서

테라스 테이블도 괜찮냐고 묻길래

상관없다고 했지요.


막상 식당에 도착해 보니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회식이었습니다.


넓은 홀에도 사람들이 꽉 차있고

일부 테이블은 테라스도 점령하고 있어서

우리는 한쪽 구석 테이블에 자리했습니다.


저도 군에서 회식자리에 많이 참석했지만

옆에 있는 일반인 테이블이 있는데도

뭔가를 연호하고, 무엇인가를 추첨하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시끄러웠습니다.


시끄러운 거야 회식이니 그럴 수 있다 싶은데

정작 눈살을 찌푸리게 한 건

옆 테이블의 대화 때문입니다.


담당 학생 중 누가 문제가 있었는지

"그건.. 내 새끼 때문이에요.."


그러자 곁에 있던 분들이 건배를 외칩니다.

"그럼 건배하지 뭐!.

짠 하면 "개새끼" 하는 겁니다"


그 건배사는 우리 테이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걸 들으려고 귀 기울인 게 아니지요.

술도 한잔씩 하셨겠다, 워낙 소리가 크다 보니

의식하지 않아도 귀청 떨어지게 들린 겁니다.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 건배사가 욕설이어 서기도 했고

그 게 어떤 의미로 사용 됐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외치는 건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그러니까 문제다'가 아닙니다.

그런 말이 외침이 되거나

건배사가 된다면 그게 누가 했던 문제라는 겁니다.


주변을 배려하지 않은 그들의 행동이

많이 아쉬운 저녁식사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자주 가는 맛집이라

식사는 맛있게 하고 왔다는 겁니다.

사장님도 이렇게 소란스러울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추가 서비스를 잔뜩 주셨지요.

집에 돌아와 거실에 둘러앉아

그간 지내온 이야기보따리를

밤늦게까지 풀었습니다.


다시 가야 한다는 저승사자는

흰머리 소년과 제가 '자고 내일 가라'라고

꼬드겨서 지금 제 방에서 고이 잠자고 있습니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때로는 귀를 막고 싶을 만큼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직 따뜻한 얼굴만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여유 있는 금요일엔

답글을 드리는 날이자,

흰머리 소년 연재를 쓰는 날인데

모두 건너뛴 날이 되었습니다.


제 방을 저승사자에게 내주었으니

거실에서 잠든 하루였지만

피곤함 보다 따뜻함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집 안의 웃음소리로

밖에서의 소란함을 잠재운 어제,

이토록 소중한 풍경이면 충분합니다.


모두, 소중한 풍경을 담는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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