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토지』를 써 내려가는 중입니다.

꾸준함이라는 이름의 토지

by 글터지기

3일간의 휴일 중 이틀이 지났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날이었지요.

하루 두 편의 글을 쓰자고 했던 일도

어제는 한 편만 발행하고 잠든 날입니다.


오늘은 온전히 내 의지대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을 열었습니다.


창 밖 풍경을 사진에 담고,

그간 써왔던 글을 다시 보며 필사하고,

글 한 편을 쓰겠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돈 주고 산 글감 꾸러미',

'한국사 일력'을 습관처럼 읽었지요.


오늘이 1994년 박경리 작가가

대작, 『토지』를 완간한 날입니다.

무려 26년의 집필 기간이었습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최 씨 일가의 고난과 삶을 그린 작품이지요.

5부 16권으로 완성한 그 대작이

제 서재에는 총 20권으로 꽂혀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다른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가

뜬금없이 『토지』 이야기를 끌어들인 건,

독서의 다양한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을 읽기 시작한 시기가

1994년이라고 기억합니다.

소위로 임관한 해이기도 해서지요.


군에서 장교 막내가 책을 본다고 하면

선배들의 눈총과 비아냥이 건너왔습니다.


'요즘 군대 좋아졌다.

쫄따구가 책도 볼 시간이 있고..'


그 속에서도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결정적인 도서가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아리랑』,『한강』입니다.


유통업에 배송 노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종이책을 가지고 다닐 수 없으니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반응은 마치 찍어낸 듯 비슷했습니다.

'배송하기도 바쁜데 별 짓 다한다'


노동하는 놈이 무슨 책을 읽고 글을 쓰겠냐는

시선이 지금까지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평가나 눈치가 이제는 익숙합니다.

주변 반응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내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26년 동안 한 작품을 완성한 박경리 선생처럼,

저 역시 비슷한 시간을 읽어 왔습니다.


종이책으로 몇 권을 읽었는지,

오디오북으로 몇 권을 들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는 게 중요합니다.


꾸준함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큼 단단한 신념도 없지요.


누군가는 '별짓 다한다'며 웃었지만,

그 별짓이 모여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새벽마다 한 줄을 필사하고,

배송길에서 한 문장을 듣고,

그 마음을 온전히 글에 담았습니다.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제 문장에는 느낌표가 없습니다.

깨달음이나 감동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제 자신의 이야기'는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이

제 마음의 '토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사적인 글터'입니다.


아주 사적인 글터를 지켜가는 사람,

'글터지기'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대작처럼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삶 속에서

매일 새로운 문장을 한 줄 쓰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그 땅 위에서,

읽고, 듣고, 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모두, 새로운 수요일을 시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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