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서기는 도대체 어디서.. 흠흠
흰머리 소년의 최근 가장 큰 낙은
산책을 나가서 만나는 어르신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시는 일입니다.
중간에 좌판을 펴고, 재배한 채소와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들과도 이야기를 잘 나누시나 봅니다.
매일 들어오시면서 과일이며 채소를
잔뜩 사서 들어오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과를 한 봉지 사 오신 날은 농을 합니다.
"아버지, 오늘은
사과 아주머니하고 수다하고 오셨나 봐요?"
"그냥 맛있을 거 같길래 사 왔지" 하시지요.
그래서 우리 집은 냉장고가 터지기 직전입니다.
고추는 봉지채로 선입선출되다가 퇴출되고,
감자 고구마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도 과일을 많이 사 오시고,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게 많아
이렇게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럴 거면 믹서기를 한 대 사서,
갈아서 아버지 드셔야겠어요."
별 시답지 않은 소릴 한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셨었는데,
그걸 또 내심 기억하셨다가
어르신들 좌판에서 받아 오신 모양입니다. ㅎㅎ
"이건 어디서 났어요?"
"쓸만하다는 데 버리기 아깝다고 해서 받아왔지"
아무리 봐도 제가 보기엔 중고 장터가 열려
분명히 몇 만 원 주고 사 오셨을 게 뻔한데
그저 얻어왔다고 시치미를 떼고 계십니다.
이럴 땐 모르는 척해드리는 게 국룰.
그런데 이게 커도 너무 큽니다.
이렇게 크면 문제가 뭐냐 하면,
사 오시는 게 점점 많아지실 거라는 거지요. 하하하
지난 일요일 아침 헬스장을 다녀오는 길에
공원 산책로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입니다.
지팡이도 본인 좋아하는 등산용으로만 쓴다고
고집하시다가 겨우 어르신용 지팡이로 바꿔드렸는데,
새로 하나 바꿔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가가 벤치에 잠시 함께 앉아
지팡이를 더 단단하게 조여드렸습니다.
날도 추워졌으니, 옷도 따뜻하게
한 벌 해드려야겠네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걸음이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다른 어른들과 함께 다니시지 못하고
혼자 지팡이를 짚고 가는 뒷모습이 짠합니다.
다음 주에는 아웃렛을 함께 다녀와야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믹서기도 생겼겠다
과일도 채소도 다 갈아서 드시자고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