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그러지 마시라고요 ㅋㅋ
흰머리 소년과 오래 함께 살다 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왕왕 생기지만
대체로 마음을 나누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흰머리 소년의 개인주의적 성향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식탁에 반찬을 차려 놓고 있으면
본인의 수저만 딱 챙겨 와서 자리에 앉습니다.
밥을 뜨러 가시면 본인 밥만 뜨고 밥솥을 닫으시고,
도시락김 두 개를 올려두면
두 개 중 정말 하나만 본인 것 이라며 개봉해 드십니다.
반찬 여러 개를 꺼내놓으면
또 묘하게 본인 드실 반찬 통만 열어놓고 드십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여쭤 본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 같이 열어두고 가져다 두면 되는데,
왜 아버지 것만 그렇게 갖다 놓으세요?"
"내 것 만 챙기면 되지,
넌 네가 알아서 챙기면 되잖아."
"다른 아버지들은
'너 많이 먹어라'하는 게 정상이잖아요?"
"응.. 너 많이 먹어"
이쯤 하면 웃다가 쓰러집니다. 하하하
이해가 안 가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익숙한 습관이라 상관없지만
가끔 잔소리는 합니다.
"아버지, 다른 데 가서 이러시면 안 돼요."
이상한 건, 반찬을 만드시건,
식사 준비를 하시건 다 같이 먹을 거라며
준비하시는데 왜 유독 드시는 것에만 그럴까.
참 고칠 수도 없는 습관입니다.
오늘은 퇴근해서 들어서는데,
집이 조용합니다. 주무시나 싶어서
흰머리 소년 방을 보니 안 계십니다.
안마의자에 쏙 들어가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ㅋㅋ
"아버지, 안마의자 별로라면서요? ㅎㅎ"
"귤 사다 놨다. 식탁 위에 봐라."
대답은 동문서답이십니다.
오늘은 집에 귤이 풍년입니다~~
흰머리 소년의 이런 습관이 이해되지는 않지만,
혹시 이런 게 부자간이여서일까 싶어 집니다.
정겨운 소리가 오가는 일 없고,
그저 각자 해야 할 일을 챙기는 건 아닐까.
모녀 관계라면 달라졌을까?
하기야 사랑이 내 기준으로 찾아 올리 없고,
그 사람의 방식으로 오더라도 결국 사랑입니다.
오늘 귤 한 봉지처럼
그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게 사랑일 겁니다.
그래도 억울해서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