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령 김오랑
영화 '서울의 봄'에 등장하는 인물 중
유일하게 쿠데타에 맞서다 전사한 군인이
한 명 등장합니다.
김해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는 복귀해서
1979년 3월 비서실장에 보직 됐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밤,
군 내부에서 벌어진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은 장교였습니다.
그는 가슴과 배에 소총 여섯 발을 맞고,
12월 13일 새벽 숨졌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백영옥'은 특전사 관사에서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이튿날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충격 때문이었을까,
1980년 두 눈의 시력을 잃고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두환과 부하들은 사건 후
김오랑의 주검을 뒷산에 서둘러 묻었다가
이듬해에야 현충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1990년이 돼서야 '중령'으로 추서 됐습니다.
백영옥은 1990년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소송을 걸기로 결심했으나,
각종 협박과 회유를 받았고,
1991년 결국 소송을 포기했습니다.
전두환 쪽 사람들은 위로금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얼마뒤 백영옥은 베란다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문의 죽음.
2009년 김오랑 추모비가 특전사에 세워졌고,
2023년에서야 '순직'대신 '전사'로
공식 기록됐습니다.
그 밤에 모두가 침묵했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불의에 저항했던
그 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이 역사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아닐까.
그는 영웅이 되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도,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킨 군인.
명령과 양심이 충돌하는 순간,
그는 계산하지 않았을 것이고,
눈치 보지 않았습니다.
뒤를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작년 어느 장군들과는 아주 대조적인 장면이지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기억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름 하나를 다시 적어봅니다.
쿠데타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군인.
그리고 끝까지 군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에필로그
지난주 한겨레신문 '나는 역사다'를 스크랩했습니다.
정치와 군대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도저히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지켜온 우리의 민주주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34148.html
https://namu.wiki/w/%EA%B9%80%EC%98%A4%EB%9E%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