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내과에서 요청한다는 게 ㅋㅋ
매주 화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는 날입니다. 지난달 독감 예방 접종과 코로나 예방 접종을 했어야 할 흰머리 소년은 깜빡 잊어버렸다며 코로나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 앞 내과에 백신이 다 떨어져서 결국 제가 모시고 의료원을 가야 했습니다 가야.
흰머리 소년 입장에서야. 제가 일찍 끝나는 화요일을 기다렸을 것이지만 저도 화요일 오후에는 제 개인 일정이 없는 건 아니지요. 일찍 퇴근해서 라면을 하나 끓여 먹으려고 하는데 흰머리 소년께서 테이블에 앉아 백신이 어디 있는지 보건소에 자꾸 전화해 보라고 하는 겁니다. 시간은 12시 반이었는데 병원이건, 의료원이건 다 점심시간이라고 말씀을 드려도 "에이 짜증 나"를 연발하시며 계속 저만 바라보시는 겁니다. 라면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일이지요. 결국 그 성화에 못 이겨 13시 01분에 보건소에 전화해서 백신이 있는 병원을 알아내, 집 근처 내과에 모시고 가서 예방접종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때에 반드시 하셔야 "에이~짜증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그러게 지난번에 독감 예방 접종 받을 때같이 받으시지요?"
"그땐 몰랐지 에이~ 짜증나. "ㅋ
흰머리 소년은 6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심혈관 내과 뇌종양 내과입니다. 6개월에 한 번 성적표를 받아오시는 날이지요. 지금까지는 '우리 집 저승사자'(딸)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왔는데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하고 나서는 시간 내기가 어려우니까, 고맙게도 '마음지기'(연인)가 모시고 다녀옵니다.
어제가 그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10시에 예약됐는데 7시 반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셨다지요. 평소 혈당 관리나 이런 것들을 잘 해오셨기 때문에 진료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심혈관 내과 진료를 마치는데, 흰머리 소년은 의사 선생님께 요청했다지요. ㅋ
"선생님 무좀 약 좀 처방해 주세요."
마음지기가 옆에서 깜짝 놀라
"아버지 심혈관 내과에서 그건 좀... ㅋ"
담당 주치의께서 크게 웃으며 가까운 동네 피부과에 다녀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병원에 나오시면서도.
무좀 약을 받지 못했다고 "에이~ 짜증나"를 연발하셨습니다.
작년 여름에 무좀으로 고생하신 적이 있고 제가 약을 사다 드려 발라드인 적도 있어서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마 무좀이 또 도지신 모양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발에 염증이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한 약을 사다 드려야겠습니다. 추가해서 다음 주 화요일 오후에는 피부과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에이~ 짜증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투덜대는 아이를 보는 기분이 들다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 대신 전화해 주고, 누군가 대신 병원을 알아봐 주고, 누군가 대신 다음 화요일 일정을 챙겨주는 이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고맙게 느껴집니다. 짜증을 낼 수 있다는 건, 기대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뜻이니까요.
다음 주 화요일 오후, 피부과 대기실에서 또 한 번 “에이~ 짜증나”를 듣게 되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말이 줄어들수록 제가 할 일도 조금씩 줄어들 테니까요.
이렇게 매번 흰머리 소년은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 이 글은 일을 하면서 음성으로 작성했습니다. 최소한의 편집과 오탈자 검사를 마치고 과감하게 발행하기로 마음먹은 글입니다.